[Fiction2024: 병원3] 동굴

강현수
강현수 · 영화와 冊.
2024/11/27
말을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했다. 자기 이야기를 끝없이 펼쳐내는 사람들. 그런 부러움과 요람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를 재우려는 노인의 이미지가 결합해 어린 나에게 다가왔었다. 성인이 된 나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긴장했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런 고민을 포기하지 않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이야기의 조합 방식은 무한대라는 것. 즉, 나에게 말하기가 어려웠던 건 내가 말을 더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이야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더 세련된 이야기는 더 자주 언급된 이야기일 뿐이다.

병원. 자정이 넘어서 나는 침상 옆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2인실이었는데 혼자 쓰고 있었다. 아파서 누른 것은 아니었으나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입원 병동은 하나의 마을과도 같다. 이 병동과 저 병동의 분위기가 달랐다. 분위기는 보통 간호사들이 조성하는 편이다. 특히 수석 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병동 카운터에서 버튼 알람에 반응해 한 간호사가 내 병실로 왔다. 간호사들은 친절했다. 처음 입원했을 당시부터 느꼈던 이들의 친절함은 1층 원무실 직원들과 채혈실 의료인들에게서 느낀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부터 나타나는지를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있다. 환자 수의 차이. 바쁨의 정도, 남아 있는 인내심의 정도였다.

수지라는 이름의 젊은 간호사는 유유자적한 분위기에서 사회 초년생을 보내고 있었다. 수석 간호사는 중년 여성으로 인자해 보였고, 수지는 그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였다. 부모가 중요하고, 선생이 중요하듯, 언제 어디서나 시작이 참 중요한 법이다. 수지는 무슨 일이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녀의 발걸음 손놀림 목소리 모두에서 배려심이 묻어 있었다.

악몽을 꿨습니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나는 식은 땀을 훌리고 있었는데, 그녀는 가만히 내 이마에 손을 짚어보았다. 열은 나지 않지만 땀을 많이 흘리시는군요. 정맥에 꽂힌 바늘에 연결된 관, 관을 따라 올라가면 약물을 담은 투명한 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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