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계절1

이종호 · 영어 번역가
2023/11/23
단편소설 - 미완의 계절1

1
곰팡이가 시커멓게 한 쪽 벽면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나흘째 줄기차게 퍼붓는 늦가을 비로 창문 쪽 천장 벽지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떨어지는 빗물을 받기 위해 바닥에 갖다 놓은 큰 고무 대야가 이미 절반쯤 차 있었다. 경욱은 빗물이 튄 방바닥을 걸레로 훔치고 대야에 고인 물을 화장실에 쏟아 버렸다.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눅눅했다. 숨쉬는 공기마저도. 
최경욱은 반 지하 단칸방에 자취를 하고 있었다. 경욱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과 시골 부모님이 도와준 돈으로 겨우 마련한 월셋집이었다. 4년 전 이사 오던 날, 그의 아버지는 트럭으로 이삿짐을 옮겨 주었다. 살림살이라고 해봐야 고작 낡은 플라스틱 옷장, 냄비, 책 박스 정도였다. 허리가 안 좋은 그의 아버지는 이삿짐 일부를 골목에 부려 놓았다. 경욱은 이삿짐을 하나하나 반 지하 방으로 옮겼다. 그때, 앞집 2층 창문이 열리더니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내밀고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야. 개새끼들아. 그 쓰레기 안 치워. 골목 지저분해지잖아!”
경욱은 고개를 들어 그 남자를 노려보았다. 
“야, 이 새끼야, 뭘 쳐다봐? 죽고 싶어?”
경욱이 발끈하며 일어서는 순간, 백발성성한 그의 아버지가 윗집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네. 죄송합니다. 곧 치우겠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을 향해 돌아서서 조용히 말했다. 
“아무 말 하지 말아.”
경욱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납덩이가 얹힌 듯 가슴이 답답했다. 
   
경욱은 벽에 슨 곰팡이와 습기로 불룩해진 천장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받는 이는 신완열 교수였다. 그는 경욱이 올해 졸업한 대학원의 전임 교수로 현재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다. 
경욱은 작년 9월 영문과 조교인 박동섭으로부터 신완열 교수가 호출한다는 연락을 받고 학교에 갔었다. 그는 지하철역에서 나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주위에는 아무도 서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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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 영어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석사. 안산1대학교와 대림대학교에서 강의를 했고, 다수 매체와 기업체에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잘난 척하고 싶을 때 꼭 알아야 할 쓸데 있는 신비한 잡학 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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