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스러운 일이 있었다
2022/06/23
당혹스러운 일이 있었다. 아내의 친정에 갔을 때, 잠시 아이를 두고 둘이서 데이트를 나섰다. 주변에 있는 미술관에 들러볼 생각으로 네비게이션을 켜고, 시골길을 따라 달렸다. 그런데 좁은 골목을 지나 작은 언덕을 넘어선 순간, 길 한가운데 검은 천막 같은 걸 깔아두고 무언가를 말리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차도 한 가운데를 저렇게 막아두어도 되나, 하고 살짝 화가 났다.
처음에는 후진을 하여 길을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이미 너무 길을 많이 들어온 터라, 한참이나 좁은 골목을 후진해서 나가기가 곤란했다. 그래서 아내랑 이야기를 해보고, 차가 못 지나가게 막아둔 상자를 치우고 바퀴 사이로 '그 말리는 것들'을 지나가보기로 했다. 아내가 차에서 내려 쪼르르 달려가, 상자를 치우고, 나는 그 위를 지나가는데 우드득 무언가 밟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이걸 어찌하나 싶은데, 다시 아내가 차에 타고, 네비게이션은 계속 길을 따라 가라 하고, 내려서 그 '무언가'를 확인해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앞을 보니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후진해서 가자니, 방금 밟았던 '무언가'를 또 밟을 것 같고, 진퇴양난에 빠져 일단 내려볼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할아버지 한분이 부지런히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창문을 내렸고, 할아버지는 다가와서 욕을 했다. "미쳤냐? 미쳤어? 미쳤냐고." 아내와 나는 갑작스런 욕에 벙쩌버렸는데, 할아버지가 다시 돌아가더니 땅콩 한줌을 들고 와서 차 안에 있던 아내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 하고 그 위에 쏟았다. "이거 보여? 이거 어떡할거야? 너네들이 다 사가!"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마음이 무척 복잡했다. 차가 밟은 건 땅콩이었는데, 아마 대부분은 밟지 않았을 것이고, 끝쪽에 있던 몇 개 정도를 밟았을 것이다. 나는 부서진 것들을 다 사가겠다고 대답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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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등의 책을 썼습니다.
현재는 변호사로도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