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약을 버리며 2) : 까닭모를 서러움.
1980년..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경신년 혹한의 기운속에 까까머리를 길고, 당시엔 제일 멋진브랜드인 버킹검 기성복 양복을 새로 사서입고, 참석한 신입생 환영회에서 비로소 경영대학 전체에 양복입은 사람은 딱 두명이란 사실을 알게되었었다.모두들 우중충한 짙은색의 점퍼 내지는 물들인 군복 비슷한 것들을 걸쳤고,신발들은 낡아서 운동장과 구분이 안되었다. 그 중 유독 두명만이 짙은 곤색양복에 까만 구두를 신고 있어서 눈에 띄는 그런 모습으로 입학식에 참석을 하고, 경영대학으로 돌아와서 보니 남자들만이 그득한 반에 여학생 한명이 눈에 띄었다. 그 여학생은 유일한 반의 마스코트였었다.
당시엔 써클이라 불리던 동아리 모임에 스카우트되다 시피 참석을 하게되었고, 그 모임은 머큐리라는 "그리스 신화의 상업의 신"에서 이름을 따온 음악과 문학을 한다는 동아리였었고, 남학생은 전부 경영대학생, 여학생들은 주로 사범대,음대,미대,가정대 출신이 주를 이루었다. 바하를 들었고, 헨델을 들었고, 그리고 몇몇 데모에 필요한 행진곡들을 배우고 사회고학 서적들을 주로 읽었었다. 시를 낭송하기도 했고 몇편의 자작시를 만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난 항상 우울했다. 사실 진즉, 관악캠퍼스에서 생활을 해야하는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잠시 이곳에서 머물어 시간을 보내는 박제된 천재인지라 그곳의 모든 중생들은 어리석었고 수준미달이었다. 그렇게 끝을 모른 자만과 허영심과 교만이 하늘을 찌를 수록, 뻔한 집안 형편상 재수를 할 수도 없고, 학교를 계속다녀야 하는 자신이 너무 싫어졌고 그것은 치기어린 술부심이 되기도하고 또래보다 먼저 사회문제에 발을 들여 놓게되는 계기가 되었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동아리엔선 "머큐리의 밤"이란 문학과 음악 행사를 했었고, 거기서 우리들은 유치한 자작시들을 낭송하고 "본향을 ...
당시엔 써클이라 불리던 동아리 모임에 스카우트되다 시피 참석을 하게되었고, 그 모임은 머큐리라는 "그리스 신화의 상업의 신"에서 이름을 따온 음악과 문학을 한다는 동아리였었고, 남학생은 전부 경영대학생, 여학생들은 주로 사범대,음대,미대,가정대 출신이 주를 이루었다. 바하를 들었고, 헨델을 들었고, 그리고 몇몇 데모에 필요한 행진곡들을 배우고 사회고학 서적들을 주로 읽었었다. 시를 낭송하기도 했고 몇편의 자작시를 만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난 항상 우울했다. 사실 진즉, 관악캠퍼스에서 생활을 해야하는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잠시 이곳에서 머물어 시간을 보내는 박제된 천재인지라 그곳의 모든 중생들은 어리석었고 수준미달이었다. 그렇게 끝을 모른 자만과 허영심과 교만이 하늘을 찌를 수록, 뻔한 집안 형편상 재수를 할 수도 없고, 학교를 계속다녀야 하는 자신이 너무 싫어졌고 그것은 치기어린 술부심이 되기도하고 또래보다 먼저 사회문제에 발을 들여 놓게되는 계기가 되었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동아리엔선 "머큐리의 밤"이란 문학과 음악 행사를 했었고, 거기서 우리들은 유치한 자작시들을 낭송하고 "본향을 ...
대학생이 된 큰집 오빠에게 큰어머니가 당부했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절대로 데모판에 끼지말고 공부만 해라." 그리고 몇년후 제가 대학생이 되어있을때 운동권 친구들과 제가 섞인 동아리 임원들과의 충돌...혹은 알수 없는 역역의 얇은 벽을 느꼈지요. 그벽은 겉보기엔 얇았으나 굉장히 두꺼워서 깨부수기 어려웠습니다. 임원이었던 제겐 왜? 굳이? 섞여다니냐? 라는 뒷말이 따라붙긴 했지만.....저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선배시니 그시대 대학문화..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이 더 깊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해봅니다. 20대 초반 젊는이의 나라사랑은 무엇보다 더 진하고 뜨거웠을테니요!!!.....(앗! 근데 제가 글전체를 이해하고 댓글을 쓰는 건지 이거 원.......옛날생각에 취해서 ..ㅋ..원글에 다시 돌아가야할것 같습니다. 이해해주세요~^^)
@수지님 ! 저의글을 이해하시는데 한계가 있다고 하시니 더 쉽게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은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클레이님의 글을 온전히 이해하고 읽기에는 제가 한계가 있네요..
예전에 출판된 소설책을 읽는 느낌이 납니다.
예전에는 대학생이 되면 운동권모임과 데모로 한시절을 보낸적이 있었지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클레이님도 많은 번뇌속에 청춘을 보내셨나봅니다.
대학생이 된 큰집 오빠에게 큰어머니가 당부했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절대로 데모판에 끼지말고 공부만 해라." 그리고 몇년후 제가 대학생이 되어있을때 운동권 친구들과 제가 섞인 동아리 임원들과의 충돌...혹은 알수 없는 역역의 얇은 벽을 느꼈지요. 그벽은 겉보기엔 얇았으나 굉장히 두꺼워서 깨부수기 어려웠습니다. 임원이었던 제겐 왜? 굳이? 섞여다니냐? 라는 뒷말이 따라붙긴 했지만.....저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선배시니 그시대 대학문화..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이 더 깊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해봅니다. 20대 초반 젊는이의 나라사랑은 무엇보다 더 진하고 뜨거웠을테니요!!!.....(앗! 근데 제가 글전체를 이해하고 댓글을 쓰는 건지 이거 원.......옛날생각에 취해서 ..ㅋ..원글에 다시 돌아가야할것 같습니다. 이해해주세요~^^)
클레이님의 글을 온전히 이해하고 읽기에는 제가 한계가 있네요..
예전에 출판된 소설책을 읽는 느낌이 납니다.
예전에는 대학생이 되면 운동권모임과 데모로 한시절을 보낸적이 있었지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클레이님도 많은 번뇌속에 청춘을 보내셨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