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진 빚
2023/11/11
이사를 할 때마다 가지고 있던 책들을 헌 책방에 팔았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볼 거 같지 않아서였다. 베스트셀러만 몇 권 사 보는 정도였고, 도서관에도 가지 않았다. 그만큼 책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책은 잠깐의 재미를 주는 종이로 만들어진 물건이 지나지 않았다.
책을 모으게 된 것도, 도서관에 다니게 된 것도 책을 다시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사는 게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쯤 책은 내밀한 쾌락을 발견하는 기쁨을 주었다. 애인을 숨겨 두고 몰래 만나는 것 같은 비밀스런 즐거움이었다. 책은 만날수록 빠져들게 되는 마력의 연인이 되었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지는 것처럼, 나는 ‘책’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연인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평양의 물을 찻잔으로 퍼나를 때처럼 막막해졌다. 지금까지 나와 있는 책들도 감당할 수 없는데, 자고 나면 수만 종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 나는 무엇을, 얼만큼 읽을 것인가 헷갈렸다.
독서 모임에 들어가자 이런 고민은 자동적으로 해소되었다. 나보다 많이 읽은 사람들이 책을 선정해 주는 수고를 대신 해주었기 때문이다. 내 취향이라는 게 없는 상황이라 모임에서 뽑아 준 책들을 군말 없이 성실히 읽었다.
끝나고 나면 진이 빠지는 다른 모임과는 달리 독서 모임은 뭔가 쌓이는 느낌이 들었다. 매주 다른 책을 읽으니 다양한 얘기를 하게 되었다. 책에 대한 얘기와 더불어 책을 읽으며 느낀 점, 자신의 경험까지 나누다 보니 서로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책 읽기에 취미가 생기자...
철학, 문학을 전투적으로 공부하며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매일 읽고 생각하고 쓰는 생활을 하다보니 내가 축적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