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
2024/05/24
자신의 직업적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사적 실존에 넘기지 않으려는 데서 찾은 '품위'를 자기 생의 뼈대로 삼고 살았던 스티븐스는 주인 페러데이의 배려로 시작된 여행길에서 그의 지나간 날들, 그러니까 '남아 있지 않은 나날'들을 반추한다.
그 반추의 과정에서 보이는 1인칭 화자의 회상 속에는 영국적, 혹은 집사로서의 전문가적 자부심과 위대함에 대한 고뇌와 안간힘이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의 등을 꼿꼿하게 떠받치던 뼈대로서의 품위가 놓쳐버린 것들, 예컨대 켄턴 양과의 사랑, 아버지의 임종,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나치에 부역하게 된 주인에 대한 충성 등이 자위적 시치미들로도 가려지지 않은 눈물이 되어 꼿꼿했던 뼈들 사이로 삐죽하게 흐르는 걸 본다. 그에게 어쩌면 지난 생이 움켜쥔 의미라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닐까?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러 어느 저녁 선창 가에 앉은 스티븐스. 그는 한 노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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