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세유, 베르사유.. 시대착오적인 외래어표기법 Benin이란 나라를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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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ist96 · 호기심 많은 기후생태활동가이자 한의사
2023/02/06
한국어 수업에서 만나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학생들에게서 나도 많이 배운다. 첫 순간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저는 (한국) 사람이에요.>에서 괄호 속을 각자 나라로 바꿔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바로 여러 학생들이 손을 들고 묻는다. ‘나라가 여러 개예요. 어떻게 말해요?’ 아차, 부모의 국적이 다른 경우, 소속감을 갖는 모국이 두 개가 되는 것이다! 조부모들의 국적이 다르다면 심지어 모국이 서너 개일 수도 있다. 이런 건 교재에 없었는데... 이럴 땐 어떻게 말하더라?
   
“저는 스위스-튀니지 사람이에요.”
“저는 영국하고 필리핀 사람이에요.”
“저는 프란스-이따리아 사람이에요.”
“저는 스파인하고 덕일 사람이에요.”
귀여운 실수들. 슬며시 웃으며 외국어의 한국어 표기법에 맞게 가르쳐준다.
“프란스 -> 프랑스, 이따리아 -> 이탈리아, 스파인 -> 스페인, 덕일 -> 독일. 이렇게 써야 해요.”
   
이 주변 지역 이름도 가르쳐준다.
“<제네바>라고 써야 해요. 쥬네브(Genève; 제네바의 프랑스식 이름), 겐프(Genf; 제네바의 독일식 이름), 지네브라(Ginevra; 제네바의 이탈리아식 이름)라고 부르면 한국인은 아무도 못 알아들어요.” (그러고 보니, 한국어 '제네바'는 딱히 영어식 발음도 아니다. 영어식 지명 Geneva를 한국어로 가장 가깝게 옮기면 ‘줘니-붜’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제네바' 발음을 따라하며 웃는다.
   
<취리히>를 칠판에 쓰고 취.리.히.라고 또박또박 읽어줬다. 어디일까요?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Zürich를 <취리히>라고 써요. Zürich라고 발음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을 거예요.”
학생들이 박장대소한다. 그럴 만 하다. Zürich와 취리히는 도쿄과 동경만큼이나 완전히 다른 발음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서툰 글씨로 제네바, 취리히를 열심히 받아적는다.
   
다음 학생의 차례. 
“저는 스위스하고 프랑스하고 베닌 사람이에요.”
   
베닌? 베닌이 어디지? 철자를 불러달라고 했다. Benin. 여전히 모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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