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9
"5.18의 특수성에 대한 논평"
이렇게 빨리 [털어놓고 말해보자면] 2부를 쓸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최정운에 대한 저의 논평글에 대한 반론이라 보기도 어렵고, 누군가가 5.18을 '특이한 사건'으로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굳이 논평을 가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 주저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얼룩소를 시작하고 사실상 처음으로 "받은글"이라 그래도 제 의견 몇가지 제기하는 것으로 예의를 다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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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수성"과 "특이성"은 다른 개념이다.
김영빈씨는 5.18 광주항쟁을 "절대적 공동체론"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제 글에 대한 반론으로 5.18은 "한국사에서는 물론이고 세계 민주주의운동사에서도 특이한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계신 듯합니다. 그에 대한 근거로 1) 민주화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진압하는 것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지만 시민들이 신군부의 만행에 맞서기 위해 "절대공동체"로서 시민군을 결성한 경우는 '드물다'는 것과 2) 군부의 만행과 거기에 맞선 저항의 이미지가 "유독" 무수히 재생산된다는 것을 삼고 있습니다.
일단 1)에 대해 가장 먼저 언급할 부분은 '특수성'과 '특이성'은 다른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특수성은 보편성과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 일정한 정도의 '비교'를 전제로 합니다. 그렇기에 김영빈씨 또한 1)의 근거로 다른 민주화 항쟁(예컨대 부마항쟁)과의 비교를 하거나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다루거나 한국 '특유의' 자유주의를 문지영을 인용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특수성이 곧 "특이성"이 되는가? 사실 특수성이 보편성을 전제로 하고, 특이성은 그렇지 않다는 맥락을 강조하여 후자를 선호하는 들뢰즈나 가타리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특...
저도 개인적으로 광주항쟁이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의 글에 적었듯이 제6공화국 자체가 광주항쟁에 기초해서 성립했고 여전히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개헌 논의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더 많은 의미들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분석틀도 보다 보편화되어야 할 것 같고요. 짧은 생각이겠습니다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광주항쟁을 '절대적'인 사건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살았던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짧게나마 그렇게 배우기도 했고 5.18기념관에 가서 눈물 흘리기도 했으니까요. 광주항쟁에 관한 논의들을 읽는것이 재미있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가슴한편이 아리기도 하네요. 이런 의미있는 논의들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박"씩이나..^^;; 요컨대 선생님께서는 민중이 왜 자신의 경제적 생활상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적 투쟁'에서 벗어나는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계신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중을 프롤레타리아트와 유사한 '생산자' 혹은 '경제활동을 하는 주체'라는 측면이 더 강조될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질문을 던지시는 듯합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민중 개념은 박현채 등의 조류와 한완상 등의 조류가 있는데 전자는 계급성을 좀더 강조합니다. 생산자로서의 민중을 강조하고 거기에는 프롤레타리아트뿐만 아니라 농민 계급, 심지어는 중소기업가들까지도 포함됩니다. 여기에는 맑스주의 혁명이론의 맥락이 있습니다.
본래 맑스는 노동자의 경제투쟁이 자연스럽게 정치투쟁으로 발전할 것이라 보았습니다. <자본론>을 쓴 것도 잉여가치, 잉여노동시간을 더 많이 얻고자 하는 자본의 본성상 그것을 규제하려는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은 필연적으로 사회 전체의 노동시간을 규제하여 표준시간을 제정하는 등의 '법'적인 차원의 정치투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은 자연스럽게 경제투쟁에 나서게 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파악 속에서 정치투쟁으로 전환되게 된다는 것이고 사회주의자란 이러한 과정을 도와야 한다고 맑스는 주장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각국의 자본주의의 발전 정도가 다르고 사회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이 한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다른 계급과의 연대, 연합이 필요한데 그걸 가능하게 하는 전략전술이 '통일전선'이었습니다. 좌파 노동자 정당이 자유주의자들, 부르주아지들과 연합하면서도 그들을 좌파의 헤게모니 속으로 점차 포섭하여 사회주의로 이행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앞서의 맑스의 경제투쟁-정치투쟁 간의 필연적 관계와 결합되면서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이 점차로 정치투쟁으로 발전하면서 자신의 해방을 위해서는 자기"만"의 과제 해결로는 부족하고 여러 사회계층들과 광범위한 연합, 연대를 하며 그들 또한 해방될 수 있도록 공동의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는 식으로 논리가 발전하게 됩니다.
이러한 논리가 한국에 와서 민중론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여기서는 "지식인"들이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의 '생산자'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을 느꼈던 게 강하게 나타납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경제투쟁의 정치투쟁의 발전에 있어서의 지식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서 정치투쟁으로 발전하게 되는 의식적 작업, "의식화"라고 우리가 보통 표현하는 그런 부분들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필요성을 더 강조하게 되었던 게 글에서 적었듯이 권위주의 체제라는 당대의 정치적 맥락이었겠고요.
다시 말해서 맑스주의 쪽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항산항심 즈 자기 생활의 보장을 위해 생산활동 경제활동을 하는" 와중에서 정치적 의식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얼마만큼이나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저도 회의하는 부분이 없잖아 있고 이 부분을 포함한 책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어찌됐든 기본적인 경향 자체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민중 개념이 통일전선적인 개념으로까지 확장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와 별개로 역사학에서 다룬 '민중'은 이러한 맥락보다는 일종의 '인류학'적인 분석에 가깝습니다. 민중의 종교, 통속도덕 등을 통해 민중이 얼마나 지배계급에 의해 종속되어 있는지,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해방의 가능성 등이 나타날 수 있는지 등을 분석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위의 글에서 적었듯이 일상생활에 천착하는 것이고, 전근대 동학에 대한 해석은 이 일상생활이 동학이라는 종교와 상호작용하며 지배 체제에 어떠한 균열을 내는지 등을 주로 다룹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의식'이 반드시 시민공동체의 조직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전근대 양반 계층들만 해도 동류 의식이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사대부라는 정치적 주체로서 인식하며 하나의 정치적 의식을 지녔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용되는 말입니다.
나름 힘써 답해보았습니다. 의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민중의 범위를 지나치게 파편화하는 시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 얄팍한 지식수준으로 나름대로 민중의 정의를 내리고자 시도해본다면 마르크스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봤습니다만 통일전선론을 얘기하시길래 동의의 끄덕임을 내적으로 해봤습니다.
민중이 프롤레타리아트만 지칭하는것이 아니라 그 밖의 계층까지 포괄하는 개념(통일전선론)인 이유를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귀하께서도 본문에서 그런 뉘앙스로 말씀하신거같은데, 제가 이해하는 민중은 항산항심 즉 자기 생활의 보장을 위해 생산활동 경제활동을 하는 주체라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면 민중이 경제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측면을 과대해석 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경제적인 이익 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의 이익도 지향하니까요. 반박 부탁드립니다.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보면 민중은 동학의 인내천 사상.또는 주권재민의 시각에서 볼때 포괄적인 시민공동체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닌가?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시민이 시민의 자주성의 영향력을 자각하기 전의 전근대 사회는 계급적 동질감을 초월하여 시민공동체를 조직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요약하자면 한완상의 사상과 대치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제 얄팍한 지식과 독해력으로 불편을 만들지는 않을까 우려됩니다만..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바랍니다. 감사를 표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광주항쟁을 '절대적'인 사건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살았던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짧게나마 그렇게 배우기도 했고 5.18기념관에 가서 눈물 흘리기도 했으니까요. 광주항쟁에 관한 논의들을 읽는것이 재미있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가슴한편이 아리기도 하네요. 이런 의미있는 논의들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박"씩이나..^^;; 요컨대 선생님께서는 민중이 왜 자신의 경제적 생활상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적 투쟁'에서 벗어나는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계신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중을 프롤레타리아트와 유사한 '생산자' 혹은 '경제활동을 하는 주체'라는 측면이 더 강조될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질문을 던지시는 듯합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민중 개념은 박현채 등의 조류와 한완상 등의 조류가 있는데 전자는 계급성을 좀더 강조합니다. 생산자로서의 민중을 강조하고 거기에는 프롤레타리아트뿐만 아니라 농민 계급, 심지어는 중소기업가들까지도 포함됩니다. 여기에는 맑스주의 혁명이론의 맥락이 있습니다.
본래 맑스는 노동자의 경제투쟁이 자연스럽게 정치투쟁으로 발전할 것이라 보았습니다. <자본론>을 쓴 것도 잉여가치, 잉여노동시간을 더 많이 얻고자 하는 자본의 본성상 그것을 규제하려는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은 필연적으로 사회 전체의 노동시간을 규제하여 표준시간을 제정하는 등의 '법'적인 차원의 정치투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은 자연스럽게 경제투쟁에 나서게 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파악 속에서 정치투쟁으로 전환되게 된다는 것이고 사회주의자란 이러한 과정을 도와야 한다고 맑스는 주장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각국의 자본주의의 발전 정도가 다르고 사회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이 한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다른 계급과의 연대, 연합이 필요한데 그걸 가능하게 하는 전략전술이 '통일전선'이었습니다. 좌파 노동자 정당이 자유주의자들, 부르주아지들과 연합하면서도 그들을 좌파의 헤게모니 속으로 점차 포섭하여 사회주의로 이행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앞서의 맑스의 경제투쟁-정치투쟁 간의 필연적 관계와 결합되면서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이 점차로 정치투쟁으로 발전하면서 자신의 해방을 위해서는 자기"만"의 과제 해결로는 부족하고 여러 사회계층들과 광범위한 연합, 연대를 하며 그들 또한 해방될 수 있도록 공동의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는 식으로 논리가 발전하게 됩니다.
이러한 논리가 한국에 와서 민중론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여기서는 "지식인"들이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의 '생산자'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을 느꼈던 게 강하게 나타납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경제투쟁의 정치투쟁의 발전에 있어서의 지식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서 정치투쟁으로 발전하게 되는 의식적 작업, "의식화"라고 우리가 보통 표현하는 그런 부분들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필요성을 더 강조하게 되었던 게 글에서 적었듯이 권위주의 체제라는 당대의 정치적 맥락이었겠고요.
다시 말해서 맑스주의 쪽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항산항심 즈 자기 생활의 보장을 위해 생산활동 경제활동을 하는" 와중에서 정치적 의식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얼마만큼이나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저도 회의하는 부분이 없잖아 있고 이 부분을 포함한 책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어찌됐든 기본적인 경향 자체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민중 개념이 통일전선적인 개념으로까지 확장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와 별개로 역사학에서 다룬 '민중'은 이러한 맥락보다는 일종의 '인류학'적인 분석에 가깝습니다. 민중의 종교, 통속도덕 등을 통해 민중이 얼마나 지배계급에 의해 종속되어 있는지,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해방의 가능성 등이 나타날 수 있는지 등을 분석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위의 글에서 적었듯이 일상생활에 천착하는 것이고, 전근대 동학에 대한 해석은 이 일상생활이 동학이라는 종교와 상호작용하며 지배 체제에 어떠한 균열을 내는지 등을 주로 다룹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의식'이 반드시 시민공동체의 조직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전근대 양반 계층들만 해도 동류 의식이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사대부라는 정치적 주체로서 인식하며 하나의 정치적 의식을 지녔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용되는 말입니다.
나름 힘써 답해보았습니다. 의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민중의 범위를 지나치게 파편화하는 시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 얄팍한 지식수준으로 나름대로 민중의 정의를 내리고자 시도해본다면 마르크스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봤습니다만 통일전선론을 얘기하시길래 동의의 끄덕임을 내적으로 해봤습니다.
민중이 프롤레타리아트만 지칭하는것이 아니라 그 밖의 계층까지 포괄하는 개념(통일전선론)인 이유를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귀하께서도 본문에서 그런 뉘앙스로 말씀하신거같은데, 제가 이해하는 민중은 항산항심 즉 자기 생활의 보장을 위해 생산활동 경제활동을 하는 주체라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면 민중이 경제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측면을 과대해석 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경제적인 이익 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의 이익도 지향하니까요. 반박 부탁드립니다.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보면 민중은 동학의 인내천 사상.또는 주권재민의 시각에서 볼때 포괄적인 시민공동체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닌가?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시민이 시민의 자주성의 영향력을 자각하기 전의 전근대 사회는 계급적 동질감을 초월하여 시민공동체를 조직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요약하자면 한완상의 사상과 대치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제 얄팍한 지식과 독해력으로 불편을 만들지는 않을까 우려됩니다만..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바랍니다. 감사를 표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광주항쟁이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의 글에 적었듯이 제6공화국 자체가 광주항쟁에 기초해서 성립했고 여전히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개헌 논의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더 많은 의미들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분석틀도 보다 보편화되어야 할 것 같고요. 짧은 생각이겠습니다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