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베다니로 가는 길(9)> “누구의 죄 때문인가?” ]

안순우
안순우 · 시와 소설을 사랑합니다.
2024/05/03
동네 서쪽 산기슭에 있는 김씨 문중 제실(祭室) 뒤에 높이 솟은 돌감나무에는 잎사귀가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와 함께 빨갛게 익은 홍시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산까치 두 마리가 감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잘 익은 감만 골라서 쪼아대고 있다. 그토록 분주했던 가을 걷이가 모두 끝나고 나니 온 동네가 배불리 젖을 먹고 잠든 아기 마냥 조용하다.

오후가 되니 동네의 아녀자들이 농번기에 밀렸던 빨랫감들을 함지박에 가득 이고서 시냇가로 나왔다. 이제 시냇물에 손을 담그면 정신이 번쩍 날정도로 차갑다. 시냇가 돌 틈에 숨어있던 배때기 빨갛고 등짝이 파란 무당 개구리들도 찬바람이 불면서 모두 사라졌다. 또 하늘에는 사람들 머리 위로 낮게 나르며 지저귀던 제비들도 감쪽같이 종적을 감추었다. 시내 옆 논두렁 마른 풀섶에는 늦가을 햇살에 노란 들국화가 진하게 향기를 뿜고있다. 벌들이 꽃 봉우리에 앉아서 마지막 겨울 양식을 마련하느라 부지런히 꿀을 빨고 있다.   

“야야! 너그들 그 이야기를 들었제?
아니! 예수 믿는 집안에 왠 문둥이고?
성경책에는 예수를 믿으마 문둥병 걸린 사람도 깨끗이 낫는다 카던데....멀쩡한 사람이 와 문디가 됐는데?
그 병은 옛날부터 하늘이 내리는 벌 아이가….
아무래도 그 집안에 우리가 모르는 무슨 큰 죄가 숨어있는기라!“

동네에서 말이 많기로 소문난 명례댁의 걸죽한 입에서 독기어린 말들이 쏟아졌다. 평소 자신의 아들 욱이와 김삼열의 아들 명호가 사이가 좋지 않아서 감정의 골이 깊다. 명호가 욱이 보다 공부를 더 잘하고 명석한데다가 둘이서 싸우면 욱이가 명호를 이긴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명례댁은 김치성의 집 안의 우환을 보고서 쾌재를 울리고 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수산댁이 입을 삐쭉거리면서 한마디 거들었다.
“명호 엄마가 가을 농사철인데도 한 달 동안 집 밖으로 한 번도 나오지도 않고...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지금은 아마 부산 친정집에 내려가 있다지?
시아부지 김 장로가 왜정(倭政) 때 교회 댕기면서 신사(神社) 참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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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멸성과 불가해성을 고민합니다. 가장 존귀하지만 또 가장 부패한 인간 연구에 천착하여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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