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애스터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

액화철인
액화철인 · 나밖에 쓸 수 없는 글을 쓸 수밖에
2023/07/25
믿음직하지 않고 상냥하지도 않은 2023년 여름 시즌 최고의 걸작

아리 애스터의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는 보(Beau)라는 이름의 중년 남자가 어머니 장례식에 가는 여정을 다룬다. 영화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의 모티브며 구성을 큰 틀에서 차용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들은 현실 세계에선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것들이다. 지옥에서 온 슬랩스틱을 방불케 하는 사건의 연속은 작정하고 관객들을 당황하게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멀쩡해 보이는 노신사가 말을 걸길래 얼떨결에 대화를 시작했는데 3분 정도 지날 때쯤 그가 중증 조현병 환자라는 걸 슬금슬금 깨닫기 시작할 때의 당황스러움이랄까. 이쯤 되면 불친절을 넘어서 난폭한 지경이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과의 공감을 다른 지점에서 교묘하게 구축한다. 먼저 큰 틀의 구조가 주는 주인공의 목적이 명확하고 단순하다는 점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이건 오디세이다. 주인공이 온갖 고난을 겪고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과 재회를 하는 영웅담이다. 그러나 보(Beau)가 겪는 시련들은 기본적으로는 다양한 공포증의 현실화다. 첫 장면에 나오는 분만실에서 아기를 바닥에 떨구는 공포, 길거리에서 미친 사람이 갑자기 자기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문을 잠그지 않으면 온갖 부랑자들이 집을 쑥대밭을 만들 것이라는 공포, 누군가 자기를 언제나 감시한다는 공포, 10대 아이들은 이유도 없이 자신을 변태로 몰아붙일 것이라는 공포, 가족을 구성해 봤자 천재지변이 일어나 풍비박산날 꺼라는 공포, 섹스를 오래 안 하면 정액이 고환에 꽉 차서 터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등등. 우리가 살면서 심약한 순간에 한 번쯤 머릿속에 찾아와 2초 이상 머물다 갔을 법한 근거 없는 공포들. 보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런 공포가 현실화되는 곳이다. 벌어질 법한 일은 언젠간 벌어진다는 머피의 법칙이 너무도 분별없이 실현되는 이 악몽 속에서 그 모든 비이성적 괴담들은 오디세이 속 재앙처럼 주인공의 귀향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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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광고를 하기 위해 미술사를 전공했다. 남다른 미술사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일반 역사를 배웠다. 젊은 척하는 광고 카피를 쓰고 늙은 척하는 평론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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