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음악 에세이 '첫귀에 반한 재즈'를 연재하며

목혜원
목혜원 · 소설가
2024/02/15
열 살 때던가, 여름방학을 맞아 다니게 된 미술학원에서였다.
나무로 된 공 모양의 커다란 원구를 크레파스로 그리는 정물화 수업이 있었는데, 나는 내 그림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린 감각에도 내가 욕망하는 형상과 스케치북에 그려지고 있는 내 그림이 너무 달랐던 모양이다.
크레파스라서 이미 그어진 선과 색은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새로 그리기 위해 그리다 만 스케치북 종이를 넘기려 했다.
그때 원장 선생님이 다가와 물었다.
질문이 뭐였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물으셨던 것 같다.
묻는 음성과 태도가 다정하고 따스했던 것은 정확히 기억난다.
나는 잘못 그렸다고, 새로 그릴 거라고 답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내 곁에 앉더니 내 그림 위에 그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선 저 선, 이 색깔 저 색깔, 크레파스들이 내 그림 위에 슥슥 문질러지더니 근사한 원구 하나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대강의 틀을 잡아놓고는 내가 마저 완성하도록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림을 완성했다.
내가 잘못 그렸다고 생각했던, 처음의 선들과 색깔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흉터가 아니라 새롭게 탄생한 원구의 일부로서, 그 원구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개성으로서 남아 있었다.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
아주 먼 훗날 나는 재즈를 들으며 위로 받다가, 재즈라는 음악 장르가 그날의 추억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즉흥 연주를 요체로 하는 재즈에서 궁극적으로 틀린 음이나 틀린 박자란 없는 것 같다. 틀렸다고 생각한 그 음과 박자는 단지 다음에 올 음과 박자를 기다릴 뿐이다.
뒤이어 탄생하는 음과 박자와 함께, 연주가 끝나면 당...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사바하>와 <밀수>등을 제작한 영화사 '외유내강'에 휴먼 멜로 장르의 시나리오를 판매하는 것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2015년 출간된 장편소설 <야간 소풍>과 2020년 출간된 단편소설집 <소설, 부산> 중 '포옹'을 집필하였다.
11
팔로워 21
팔로잉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