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앞에 선 인간의 종교성 : 플레이리스트 [친숙한 재난]
2023/11/13
다음으로 러시아 국립 교향악단이 부른, 게이 음악가 차이코프스키의 작품 '케루빔 찬미가'가 흐른다. 이 곡은 본래 5세기 비잔틴 제국 시절 작곡된, 동로마 시기의 순교자를 기린 '성 요한 크리스스톰의 전례' 정교회 성가에서 착상된 것이다. 창세기의 천사 케루빔을 내건 곡답게 여기 이곳이 아닌 이계를 향한 숭고한 희구가 곡 전체에 묻어나온다. 그 다음 곡은 1365년 프랑스의 작곡가 기욤 드 마쇼가 렝스 대성당에 헌정한 노트르담 미사곡 중 일부인 '하느님의 어린양'이다.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던 시절 렝스로 몸을 피해 이 곡을 썼을 그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이어지는 트랙은 16~17세기 활동한 히에로니무스 프라에토리우스의 대림 3주 영성체곡 '보라, 주님이 오실 것이다'로 뽑았다. 이전의 다성 성악음악에 이은 다성 관악 성가곡이 귀에 흡족히 감긴다.
『사랑의 조건을 묻다』(숨쉬는책공장,2015),
『세상과 은둔 사이』(오월의봄,2021),
『불처벌』(휴머니스트,2022,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