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의 기일에 김순덕을 생각하다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1/16
이육사의 기일에 김순덕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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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대개 시인이라는 이들은 창백한 낯빛에 뿔테 안경을 쓰고 섬세한 성품에 쉽게 상처 받으며, 비쩍 곯아서 맨날 줘 터지지만 깡다구는 있어서 목소리는 카랑카랑한, 그러다가 더 두들겨 맞는, 그런 캐릭터일 때가 많다. 이를테면 천하의 터프가이 최민수도 영화 <남부군>에서 문학 청년 역으로 등장할 제에는 뿔테 안경 쓴 소심하고 예민한 인간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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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인도 사람 따라 개차반부터 성인군자까지 천차만별이겠지만 향용 사용되는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미지를 정면으로 박차는 시인이 있다면 단연 1944년 1월 16일 해방 한 해 전에 세상을 뜬 이육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라면 그 시 한 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시인인데 그 시 쓰던 손은 명사수의 손이기도 했고, 유려한 글쟁이이면서 폭탄 심지를 자유자재로 다루었으며, 혼과 뼈를 깎아 원고지를 메우던 그는 침투 훈련까지 마친 예비 ‘테러리스트’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육사는 진성 이씨다. 우리나라 유학의 태두이자 일본에서까지 명성을 떨친 퇴계 이황의 후손이다. 왕년의 경상북도는 요즘 같은 보수의 본향이 아니라 일제가 가장 눈을 부라리고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던 반란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이었다면 대구는 동방의 모스크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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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유림의 고장이었으되 가장 진보적인 사회주의자들이 득시글거리던 곳이기도 했다. 경북 말씨를 쓰면서 고향을 떠나 만주벌판과 중국 대륙을 누비며 조선 독립에 목숨을 바친 이들, 식민지 조선에서 투쟁을 조직하다가 처참하게 죽어간 이들의 이름을 헤아리자면 몇 명의 손을 빌려야 한다. 이상룡, 권오설, 권기일, 김동삼.....이육사의 고향 근처 하계마을의 이만도 집안까지. 이육사의 집안 역시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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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의 어머니 허길의 아버지 허형은 1906년 오적암살 기도 사건에 연루됐다가 만주로 망명한 사람이었다. 육사의 어머니 허길은 오늘날 동대문 인근의 거리에 그 이름을 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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