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그 문제적 이름이여

 나이를 먹으니 정신도 일종의 '자원'이라 적절하게 분배하지 않으면 하루를 원만하게 보내기 어렵게 되었다. 나와 같은 글쟁이의 삶에서는 특히 정신적 자원의 분배에 신경써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읽어야 하는 글과 읽지 말아야 하는 글의 경계를 잘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 세상에는 보지 않는 게 더 좋았을 글도 있는 법이다. 별로 의미도 없는데 괜히 읽어서 그 글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데 너무나도 많은 자원을 낭비하게 되었다가 뒤늦은 후회를 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반론을 내놓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놓는다고 해서 대화를 이어갈 생각도 없을 정도로 별 효용성이 없는데도 가끔 사람을 열받게 해서 자원을 낭비하게 하는 경우를 정말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내가 여기서 다루려는 주제는 그런 류의 글을 읽고 하루종일 거부하고 또 거부하다가 끝내 자원낭비를 택하는 바람에 논하게 된 것이다.

1990~2000년대생을 폭넓게 내가 속한 세대라 할 때, 내 세대의 공부하는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 중에서 정말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하나 있다. 바로 '자유주의'에 대한 태도이다. 공부를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순간에 분명 한번쯤은 '근대성', '자유주의' 등의 주제에 '회심'(回心)이라 표현해도 좋을 정도의 지적인 전환이 한번쯤은 반드시 경험하게 된다. 몸으로 경험하는 한국적인 상황과 머리로 배운 유럽적 맥락의 근대성, 자유주의 등에 대한 담론이랄까, 지적인 전통이랄까 이런 것들이 연결되지 않는, 괴리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구적 맥락의 자유주의적인 전통이 관측되지 않는 것이다.

막연하게 자본주의, 근대성, 자유주의 등을 '부르주아적' 가치 혹은 지배권력의 담론이라 여기고 배척해왔던 상황에서 그러한 지적인 전환은 상당히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지점에서 공부를 계속 하게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이 갈라지게 되고, 전자의 경우에는 극히 예외적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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