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베다니로 가는 길(8) 아! 천형(天刑)의 길 ]

안순우
안순우 · 시와 소설을 사랑합니다.
2024/05/03
몇 일째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앞산도 보이지 않고 담장 너머의 과수원도 안개 속에 잠겼다. 집 뒤 대나무 숲에서 산비둘기가 아침부터 청승스럽게 ‘구국구구’하며 울고 있다. 아침 안개가 낀 가을날은 햇살이 더 뜨겁다. 추수 시기가 다가오니 벼를 더 단단히 여물게 하고 감나무나 대추나무에 달린 과실도 더 달콤하게 익어간다. 금년에는 큰 태풍이나 홍수도 없었다. 과실나무에 잎사귀들이 아직도 싱싱한 게 열매들이 모두 실하게 맺혔다. 들판이나 길 가에서나 만나는 농부들의 얼굴은 밝고 흐뭇하다. 농지개혁하고 10여년이 지나니 이제는 확실히 자기 땅이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토요일 아침부터 김삼열과 이명숙은 옷을 단정히 차려입었다. 김삼열은 아직도 낮에는 더운지라 하얀 반소매 와이셔츠에다가 곤색 바지를 입었고 이명숙은 연두색 긴 치마를 입고 손에는 작약 꽃이 그려진 붉은 양산을 쥐었다. 
“어무이! 아부지! 부산 가셨다가 오늘 올라오십니꺼?”
“아니다! 부산 내려가는 김에 일보고 큰 고모집에 가서 자고 내일 올라올 것 같다. 정미는 명호를 잘 챙겨서 할아버지랑 내일  교회 잘 댕겨오너라! 예배 시간에 전도사님 말씀 하나도 놓치지 말고 잘 듣고.....알겠제?“
“어무이! 나도 따라가면 안되겠습니꺼?”
“내일은 주일이고 예배를 드려야지! 
다음 겨울 방학 때 같이 내려가자!”  
이명숙은 명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두 사람은 기차를 타려고 역(驛)으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몇 일전부터 병원에서 검사받는 날이 다가올수록 긴장되기 시작했다. 서로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왠지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이명숙은 말과 웃음이 줄어들었고 김삼열도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곤 했다. 지난 밤에 이명숙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밤새 뒤척이다가 먼동이 트기 전에 잠시 눈을 붙였다. 읍내에 있는 병원을 가려다가 혹시나 나쁜 결과가 나와서 주변에 알려지는 것보다 부산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기로 작정했다. 마침 부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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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멸성과 불가해성을 고민합니다. 가장 존귀하지만 또 가장 부패한 인간 연구에 천착하여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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