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베다니로 가는 길(11) “아이들과 함께 이 동네를 떠나세요!“ ]

안순우
안순우 · 시와 소설을 사랑합니다.
2024/05/07
부산진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도심 한가운데를 느릿느릿하게 통과하고 있다. 내려진 건널목 차단기 앞에 연탄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있는 아낙네가 한 사람 서있다. 그 뒤에는 얼굴에 연탄 검정이 묻은 두 아들이 리어카를 붙잡고 있다. 어느 집에서 겨울 채비를 하는 모양이다. 철로 옆의 집들은 모두 초라하다. 슬레이트 지붕이거나 시커먼 루핑 지붕들이다. 좁은 골목에 성냥갑만한 집들이 서로가 틈도 없이 닥지닥지 붙어있다. 가느다란 시멘트 굴뚝에는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잠시 후에 기차는 구포역(龜浦驛)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보다 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늦은 오후 시간이라 부산에서 직장 일을 마치고 기차로 퇴근하는 사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리고 구포장날, 시장을 보고 보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기차를 타는 아낙네들도 있었다. 시장 난전에서 생선을 팔았는지 옷에서 비릿한 민물고기 냄새를 풀풀 풍기며 지나간다. 또 어떤 여인은 머리에 이고 있는 빛바랜 광목 보자기에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솔솔 난다. 통로로 지나가는 젊은 여인의 등에 업힌 아기는 얼마나 곤히 잠들었는지 목을 뒤로 젖힌 체로 축 늘어졌다. 흔들리는 객실의 희미한 전등 불빛 아래 모든 얼굴이 하루 일과로 지쳐보였다. 

기차는 낙동강을 왼편으로 끼고 제법 속도를 내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드리워진 저녁 햇살이 바람에 찰랑대는 강물에 비취면서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다. 또 강 건너 둔덕에는 하얗게 마른 억새꽃이 스산한 강바람에 이리저리로 요동치며 춤추고 있다. 김삼열은 말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이영숙의 손을 꼭 쥐었다. 날씨가 차가워서 그런지 그녀의 손에는 온기가 없었다. 상처가 난 손가락이 아직 아물지 않아서 흰 붕대로 감겨져 있다. 지난 밤 늦도록 장인 이성덕과 나눈 대화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김서방! 이제 올라가서 어떻게 할참인가?
앞으로 병자(病者)라서 동리에서 같이 살 수 없을텐데...
저 아이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인간의 불멸성과 불가해성을 고민합니다. 가장 존귀하지만 또 가장 부패한 인간 연구에 천착하여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23
팔로워 3
팔로잉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