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는 왜 문제가 되었을까?
2023/06/17
이덕일은 2003년에 낸 <교양 한국사> 1권(휴머니스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해방 후 한국 학계는 임나일본부는 부인하면서도 삼한은 인정한 결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라는 상호모순적인 논리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111쪽)
위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일단 한국 학계가 임나일본부를 부인했다라고 이덕일이 쓴 점 하나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덕일은 광주MBC의 토론(2023.5.26)에서 왜가 전라도에 있었다는 자신의 주장이 폭로되자, 왜는 원래 중국에 있다가 요동을 거쳐서 남하하여 전라도에 있다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 그의 책 어디에도 이런 식의 주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주장은 에가미 나미오의 ‘기마민족설’의 변형이라는 점에서 터무니없을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교양 한국사>에서 이덕일은 여섯 페이지에 걸쳐 소개와 비판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 결론을 한번 보자.
기마민족설은, 한반도 남부에 대한 일본 야마토 정권의 정복설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한반도 정복을 합리화하는 제국주의적 이론으로 전용될 소지가 있는 이론이다. (210쪽)
즉 일본 고고학계의 연구는 3~4세기경에 기마민족이 일본을 정복했다는 에가미의 기마민족설을 상상 속에 구축된 허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212쪽)
이덕일은 여러 책에서 전라도 지방을 왜가 지배했다고 주장했고, 그 근거로는 전라도 일대에서 발견되는 전방후원분(장고분)을 들었다. <교양 한국사>에서도 이렇게 주장한다.
이처럼 국내외의 현존 문헌들은 왜의 중심 지역이 나주 지역임을 보여주고 있다. (231쪽)
한반도에 있었던 왜는 백제와 신라를 영향력 아래 두고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맞서 싸웠던 강력한 정치집단이었다. 이처럼 그간 일본인들이 왜를 일본열도 내로 비정하면서 생겼던 모든 모순은 왜를 한반도 내의 정치집단으로 이해할 때 풀리게 된다. (225쪽)
이덕일은 왜가 전라도를 지배하고 있었을 뿐만아...
@화봉요원 직관적인 비유라 좋네요. 저도 기회 있을 때 써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좀 더 간단한 삼단논법을 쓰셨네요. 저는 이런 비유를 종종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
한양은 지금의 서울이다.
한양은 예로부터 일본의 땅이었다.
즉 서울의 역사적 영유권 역시 일본의 것이어야 마땅하다.
라고 주장한다면
<한국학계>
한양이 지금의 서울인것은 맞다.
그러나 한양은 예로부터 한민족의 영토였으며, 조선시대에 수도로까지 삼아진 공간이다.
따라서 서울의 역사적 영유권은 명백히 한국의 것이다.
라고 반박할테고, 이에 대해 유사역사학의 주장.
"일본 학계는 한양이 서울이라고 주장하면서 서울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한국 학계는 입으로만 반박했다고 떠들 뿐, 매번 한양을 서울로 비정하면서 사실상 일본의 주장을 묵인한다."
@삼한 댓글 감사합니다. 황순종의 말은 워낙 횡설수설이 심해서 그것만으로도 한 편의 글이 가능하죠. 황순종 관련해서 조금 더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참으로 가소로운 것은 황순종도 <임나일본부는 없었다>(2016)에서 임나가 한반도 안에 있었다고 보았다는 것!
"『일본서기』의 임나와 신라(그리고 백제와 고구려도)는 대마도에 있던 3국의 분국임이 분명하다. 임나는 가야의 분국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이름이 가야가 아니고 임나인 것은, 가야연맹의 나라 중 임나인이 주로 대마도로 건너갔기 때문이 아닌가 추정해본다."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221쪽)
"식민사학자들은 임나가 한반도의 가야라는 근거의 하나로 「진경대사탑비(眞鏡大師塔碑)」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고 있는데, 그 비에 의하면 임나 왕족의 후예인 진경대사는 김씨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에 기록된 김구해 왕의 금관국연맹 안에 임나가 있었을 가능성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6가야는 금관가야, 대가야, 소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성산가야라고 했으므로 임나가야가 한반도에 있다가 어느 시기에 대마도로 옮겨가버렸기 때문에 6가야에서는 그 이름이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224쪽)
선생님께서는 좀 더 간단한 삼단논법을 쓰셨네요. 저는 이런 비유를 종종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
한양은 지금의 서울이다.
한양은 예로부터 일본의 땅이었다.
즉 서울의 역사적 영유권 역시 일본의 것이어야 마땅하다.
라고 주장한다면
<한국학계>
한양이 지금의 서울인것은 맞다.
그러나 한양은 예로부터 한민족의 영토였으며, 조선시대에 수도로까지 삼아진 공간이다.
따라서 서울의 역사적 영유권은 명백히 한국의 것이다.
라고 반박할테고, 이에 대해 유사역사학의 주장.
"일본 학계는 한양이 서울이라고 주장하면서 서울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한국 학계는 입으로만 반박했다고 떠들 뿐, 매번 한양을 서울로 비정하면서 사실상 일본의 주장을 묵인한다."
@삼한 댓글 감사합니다. 황순종의 말은 워낙 횡설수설이 심해서 그것만으로도 한 편의 글이 가능하죠. 황순종 관련해서 조금 더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참으로 가소로운 것은 황순종도 <임나일본부는 없었다>(2016)에서 임나가 한반도 안에 있었다고 보았다는 것!
"『일본서기』의 임나와 신라(그리고 백제와 고구려도)는 대마도에 있던 3국의 분국임이 분명하다. 임나는 가야의 분국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이름이 가야가 아니고 임나인 것은, 가야연맹의 나라 중 임나인이 주로 대마도로 건너갔기 때문이 아닌가 추정해본다."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221쪽)
"식민사학자들은 임나가 한반도의 가야라는 근거의 하나로 「진경대사탑비(眞鏡大師塔碑)」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고 있는데, 그 비에 의하면 임나 왕족의 후예인 진경대사는 김씨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에 기록된 김구해 왕의 금관국연맹 안에 임나가 있었을 가능성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6가야는 금관가야, 대가야, 소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성산가야라고 했으므로 임나가야가 한반도에 있다가 어느 시기에 대마도로 옮겨가버렸기 때문에 6가야에서는 그 이름이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2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