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품은 질문, 오래 기다린 대답 - 정혜신, <당신이 옳다>, 해냄출판사

안정인
안정인 인증된 계정 · 읽고 쓰는 삶
2024/04/26

아마 내 최초의 기억일 것이다.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닐곱 살쯤 되었던 것 같다. 생일을 앞두고 뭘 받고 싶냐는 엄마의 말에 내가 답했다. “선물 말고, 나랑 눈 맞추고 '정인아, 사랑해' 말해줘. 내 나이만큼.” 잔뜩 기대에 찬 얼굴이 무색하게 엄마는 화를 냈다. 무슨 그런 말을 하냐고, 내가 널 사랑하는 걸 왜 모르냐고. 그날 당황스럽고 무서웠던 마음이 여태 남아있다. 엄마는 왜, 엄마는 왜. 어린아이가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동생이 태어난 뒤 나누어야 하는 사랑을 생일만큼은 독점하고 싶었을까? 넌 어쩜 그런 생각을 했냐고 칭찬받고 싶었을까? 동기가 무엇이든 내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사랑과 공감’이었던 것 같다.

정혜신 작가의 『당신이 옳다』를 읽었다. 2018년에 출간되었는데 그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무려 50만 부가 팔린 초대박 베스트셀러를 나까지 읽나 싶기도 했고, 전직 사회과학도로서 심리학 서적에 가지고 있었던 편견, 사회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한다는 비판이 내재해 있었다. 무엇보다 제목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세상사에는 옳고 그름이 분명히 존재하고 판별기준이 있을 텐데 당신이 옳다니?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없는 얘기 아닌가? 그럼 사이코패스도 옳다고 할 수 있는 건가? 너무 낙관적인 견해가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서로 다른 주장에 허허 웃으며 네 말이 옳다, 네 말도 옳다 하는 황희 정승 같은 제목이군, 생각하며 책을 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완전히 오해였다. ‘당신이 옳다’는 말은 당신이 한 행동이 항상 옳다는 말이 아니다. ‘당신이 느끼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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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세상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를 들여다봅니다. 삶과 앎이 분리되지 않는, 삶을 돌보는 기예로서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독립출판물 『영국탐구생활』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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