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민다움에 대한 열광은 당연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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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ist96 · 호기심 많은 기후생태활동가이자 한의사
2023/02/05
500개 가까운 언어가 사용되는 인도에서는 이 언어 조금, 저 언어 조금 아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래서 인도 친구 니투와 나의 프랑스어 수준이 인사말과 아주 간단한 문장을 구사하는 같은 정도였을 때, 인도 친구 니투는 ‘나는 프랑스어 할 줄 안다’고 말하고, 같은 수준의 나는 ‘프랑스어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니투는 자신이 아는 수준의 프랑스어를 편하게 말하는 반면, 나는 발음과 문법을 계속 신경쓰면서 문장을 머리 속으로 완성한 뒤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가진 언어에 대한 빡빡한 기준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비정상회담’이나 ‘미녀들의 수다’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 감탄하면서 칭찬한다. 해외 교포가 한국어를 어눌하게 말하면 싸늘한 태도를 보인다. 한국인이 몇 개 국어를 유창하게 말하면 ‘다시 봤다’면서 치켜세운다. 이 때 언어 구사의 기준은 원어민다운 유창한 말하기이다. 나 역시 그런 관점으로 언어를 봐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더듬거릴 때마다 자괴감을 느끼고, 언제쯤 말이 술술 나올까 고민했다. 아직도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했다. 원어민처럼 쓰고 말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못한다’의 범주에 속한다는 관점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이분법에 기반해 있다.

몇 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유명인이 ‘전부 아니면 전부’ 이분법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한국인들은 유튜브에서 ‘독일인이 본 누구누구의 독일어 실력’ ‘미국인이 본 누구누구의 영어 발음’ 같은 것을 찾아본다. 독일인이 보기에도 누구누구의 독일어 실력이 원어민 수준으로 뛰어난지, 미국인이 보기에도 누구누구의 영어 발음이 원어민 같은지 판가름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독일인이 보기에 허술한 독일어라는 것이 판명 나면 '허세였네'라고 반응하고, 독일인도 감탄하면 '독일인이 보기에도 완벽하구나'라고 반응한다. 

이 이분법에 따르면 한국어를 외국어 억양으로 말하는 교포는 원어민다움에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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