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VS 작가
2023/10/09
1 김훈과 코맥 메카시
김훈의 << 칼의 노래 >> 를 읽었을 때 벼락 맞은 기분이었다. 황홀했다. 아, 이런 문장으로도 소설을 쓸 수 있구나. 한국 문학에 벼락 같이 쏟아진 축복이라는 찬사가 납득이 갔지만 또 한편으로는 의심도 품었다. 장편소설보다는 영웅을 노래한 대서사시에 가까운 형식을 내내 유지할 수 있을까 ? 나는 그가 언젠가는 밑천을 드러내어 결국에는 뽀록이 날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을 했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 되는 경우라고나 할까. 코멕 매카시의 초기 작품은 대부분 만연체로 쓰여졌다(핏빛 자오선, 1985 / 모두 다 예쁜 말들, 1992 / 국경을 넘어, 1994 / 평원의 도시들, 1998).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되면 느닷없이 쉼표를 찍고는 문장을 이어가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젊은 시절의 작가가 독자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욕심을 내다 보니 문장이 길어지는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내공이 쌓이고 나면 여유가 생기는 법. 코맥 매카시의 후기작인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5 >> 와 << 로드, 2006 >> 에서는 문체가 바뀌어 미니멀리즘을 지향한다. 김훈의 << 칼의 노래 >> 는 코맥 매카시의 후기작을 닮았다. 무슨 뜻이냐면 : 김훈은 인생 마지막에 썼어야 할 작품을 너무 일찍 선보인 것이다. 내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 달 너머로 달리는 말, 2020 >> 은 뽀록의 정수였다. 그는 유리 공예 공장의 숙련된 노동자처럼 문장 속에 후카시를 작뜩 불어넣어 그럴싸한 문장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의 폼생폼사가 남루해 보인다. 허투루 버릴 글자 하나 없는 문장이지만 이상하게도 정이 안 간다. 김훈의 소설을 읽으면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허투루 버릴 글자 하나 없는 문장이 반드시 훌륭한 문장은 아니구나. 인간의 희노애락을 다루는 소설에서 아름다운 문장이 반드시 좋은 문장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원빈의 잘생긴 얼굴이 다양한 배역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감점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과 같다.
2 공지영과 ...
@신승아 제가 반완서 열혈 팬입니다. ㅎㅎ
박완서가 단어를 가장 다양하게 사용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명사 사용도 탁월하고요. 냄새를 묘사하는 장면도 아마 여성이기에 장점을 살린 문장들이 아닐까 시픕니다. 하여튼 한국 문학을 대표한ㄴㄴ 작가예요. 전 조정래보다 박완서 작가에게 ㅎㄴㅍ 한표 더 던집니다. 그나저나 세련되다를 새련되다라고 본문에 썼네요. 쪽팔리군요 ㅎㅎㅎㅎ
박완서 작가 님은 주방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분이죠.
따님 말씀이 요리를 정말 잘하셨대요.
그 얘기 듣고 탁월한 묘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 남자네 집> 추천 받고 읽었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책장 덮고 떠오른 한 줄평이 ‘명사의 아름다움’이었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