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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30
alookso 유두호
[질문받SO] 은희경 "소설가는 OO할 때 소설을 잘 쓴다"


나는 이렇게 소설을 써 왔다

🤔 소설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찾고, 어떻게 정리해서 소설로 쓰나요? (muruybi)

↳💁‍♀️은희경의 답변
저는 계획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합니다. 새 작품을 쓸 때마다 얇은 노트 한 권에 인물, 사건, 배경(아시다시피 소설 구성의 3요소!)에 대해 자세히 적어가면서 준비를 해요. 인물 관계도도 만들고 배경이 되는 공간도 그려봅니다. 그런데 준비한 그대로 쓰는 경우는 없어요. 그 구상을 기반으로 시작을 하지만 그 단계에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또 많이 좌절합니다. 그러다가 진짜 제가 원하는 방향을 찾게 되면 그런 순간을 영감이 왔다고 표현해요. 일종의 발견, 에피파니죠.

그때부터는 소설 쓰기가 재미있어지고요. 계획이 소용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소설이라는 집을 짓는 데에 재료로 쓰이지는 않았지만, 마치 사다리처럼 제가 원하는 지점에 닿도록 해준 것만으로 기능을 하는 거죠. 처음 구상한 대로 쓰면 받아쓰기 같아서 창작의 재미를 별로 느끼지 못해요. 제가 쓰고자 하는 글을 그대로 옮겨 쓰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탐문을 해가다가 그 너머를 발견하는 순간의 짜릿함이 소설 쓰기의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연재 준비 중인 작품은 아직 꼼꼼하게 뼈대를 세우는 단계인데, 그걸 무너뜨리는 영감의 순간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어요.

🤔 젊은 시절을 떠올려보면 어떠신가요?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하시나요? (QOQO98)

↳💁‍♀️은희경의 답변
얼마 전 저의 첫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와 장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개정판을 냈어요. 둘 다 30대에 쓴 작품들인데요. 교정을 보면서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힘’이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믿는 힘, 저항하는 힘, 그리고 회복하는 힘 모두 말이죠. 한편으로는 그때의 열정이 살짝 경솔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뜻은 아니고요. 주장하는 방식이 좀 단순하지 않은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방식이 지금의 신중한 방식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었어요. 저의 첫 번째 책인 『새의 선물』이 지금까지도 대표작으로 꼽힐 때마다 ‘아니, 나는 점점 잘 쓰기 때문에 최근작이 제일 좋은 작품인데 왜 안 알아주는 거야’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는데, 이제 독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젊었을 때의 글이 더 힘 있고 주장이 강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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