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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받SO] 은희경 "소설가는 OO할 때 소설을 잘 쓴다"
2023/11/27
"늙지 않는다"는 표현은 조금 낡은 표현이겠지만 소설가 은희경의 글을 읽으면 때로 놀라곤 합니다. 1959년생 작가의 문장 같지가 않아서요. 올 여름에 출간된 산문집 『또 못 버린 물건들』을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은희경은 "무엇보다도 내가 가볍고 단순해지려는 사심이 있었다."며 오랜만에 산문을 쓴 이유를 밝혔는데요. 오는 2024년 새 장편 연재를 시작하는 은희경 작가에게 오랜만에 안부 편지를 띄었습니다.
👩🏻🦰 2023년이 딱 한 달 남았습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이 질문을 받고 제 스마트폰 달력 어플을 열어보았는데요. 저 자신이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대체 뭘 하느라 그렇게 바쁜지 확인해 보느라고요. 요즈음 매일 외출하다시피하면서 분주하게 보내고 있는데(평소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쯤 ‘사회생활’을 하는 정도거든요) 그렇다고 일상이 다채롭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도 신간 『또 못 버린 물건들』과 관련된 일정이 좀 남아 있고요. 강연과 심사도 되도록 하고 있어요. 이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가족과 맛있는 것 먹고 친구들 만나서 놀고, 무엇보다 밀린 독서를 하고 싶어요. 정신에 인풋이 없으니 불안하고 때로 결핍감도 느끼게 되네요.
👩🏻🦰 출판계가 심각한 불황이라는 이야기가 올해 유독 '더' 자주 들립니다. 체감하시나요?
👩🏻🦰 2023년이 딱 한 달 남았습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이 질문을 받고 제 스마트폰 달력 어플을 열어보았는데요. 저 자신이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대체 뭘 하느라 그렇게 바쁜지 확인해 보느라고요. 요즈음 매일 외출하다시피하면서 분주하게 보내고 있는데(평소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쯤 ‘사회생활’을 하는 정도거든요) 그렇다고 일상이 다채롭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도 신간 『또 못 버린 물건들』과 관련된 일정이 좀 남아 있고요. 강연과 심사도 되도록 하고 있어요. 이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가족과 맛있는 것 먹고 친구들 만나서 놀고, 무엇보다 밀린 독서를 하고 싶어요. 정신에 인풋이 없으니 불안하고 때로 결핍감도 느끼게 되네요.
👩🏻🦰 출판계가 심각한 불황이라는 이야기가 올해 유독 '더' 자주 들립니다. 체감하시나요?
당연히 느끼죠. 책의 저자로서도 그렇지만, 작은 출판사와 작은 책방들이 특히 힘들어해서 걱정됩니다. 책 읽는 인구가 줄어드는 건 어떻게 보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개편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현상 같기도 해요. 하지만 수목한계선 같은 경계까지 내몰리면 안 될 텐데요. 나무가 지구의 생명을 지키는 필수품이듯이, 책을 통해 전달되는 사유와 감각은 인류 문명의 기반이니까요. 우리 사회가 문화 인프라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대중적인 경쟁력을 떠나서 좋은 콘텐츠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하는데 현실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네요. 결과적으로 자본과 상업적 경쟁력을 가진 책만 간신히 살아남아 책방에 깔린다면 독자들로서도 큰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지 못하면 사유의 영역도 점점 획일화되고, '푸코의 감시 사회'가 떠올라요.
(네, 맞아요. 책을 읽어 달라고 겁주고 있는 거예요. 전혀 위협적이진 않네요. 보태기 : 책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에 하필 그걸 위해서 잘려나가야 하는 나무를 등판시켜서... 하지만 제가 알기로 숲에는 나무를 베어주는 간벌도 매우 필요하다고 하고, 또 재생 종이와 사탕수수 종이도 있고, 나무를 살리자는 내용의 책도 많고요. 아무튼 책과 나무는 서로 사이가 좋은 걸로. 👧🏻 )
👩🏻🦰 작가들의 직접적인 홍보 활동이 필수적인 시대입니다. 출판사에서는 작가들에게 SNS를 열심히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죠. 작가의 입장에선 이런 요구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직접 홍보가 필요하고 또 출판사에서 원한다는 건 필연적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직접 홍보 활동을 하느냐 아니냐는 작가 개인의 선택이 아닐까 해요. 제 주변만 봐도 SNS 홍보에 적극적인 작가도 있는가 하면 계정조차 만들지 않는 작가도 있습니다. 부캐로 활동하는 작가나, 저처럼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참여하여 구경만 하는 작가도 있겠고요. SNS를 하지 ‘않는’ 것을 포함해서, 작가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홍보가 모든 작가들에게 필수사항이 된다면 저 같은 소심한 작가는 좀 곤란하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저의 작가 생활은 (물리적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보태기 : 얼마 전에 랜선 사인회를 했어요. 온라인 생방송 시간 동안 책을 구매하신 분들께 저자가 사인을 해서 보내드리는 프로그램인데, 홈쇼핑 같은 느낌이라 처음 제안을 받고는 약간 주저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방송에 들어가니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책에 사인을 하며 구매자에 남자 이름이 많아서 깜짝 놀랐고요. 북토크나 사인회 때에는 남자 독자가 좀 귀하잖아요. 물론 이름만 보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샤이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홍보의 장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랜선 사인회가 의외로 재미가 있어서 제가 홍보에 소질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그날 집에 돌아가 몸살 기운에 시달리면서 아, 아니구나 깨달았죠. 👧🏻 )
👩🏻🦰 후배 작가들의 책을 꾸준히 읽고 계시죠? 어떤 작품들의 등장이 유독 반갑나요? 30년 전 작가님이 소설을 쓸 때와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질문받SO 은희경 편 댓글 당첨자
@iamretroma @최서우
두 분께서는 아래 메일 주소로 휴대폰 번호를 보내주세요.
jay@alookso.com
기프티콘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12월 10일까지 보내주세요)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최서우 안녕하세요. 제가 한국인이 전혀 없는 해외의 시골에 사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죄송한데, 소설은 쓰지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곳에서 석 달을 보낼 기회가 있다면 당장 달려갈 것입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 그러니까 저의 경우 소설이란, 사람들을 관찰하고 겪으며 생겨나는 것인데, 그럼에도 집중적으로 쓰기에는 고립된 장소가 좋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만약 고립이 저의 생활조건이었다면 저는 거기 대해 뭔가 쓸 것 같기도 합니다. 제한된 관계 속에서 더욱 심도 있게 인간의 본질을 파고들 수도 있고, 사건 중심이 아닌 미세한 분위기나 디테일로 소설의 밀도를 높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앨리스 먼로가 오랫동안 고향 마을에 살면서 그곳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주로 썼듯이 말이죠. 초보 글쓰기를 하신다니, 잘 아는 작은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싶네요. 실은 저도 글이 안 풀릴 때 그렇게 합니다. 가까운 친구에게 그 친구가 궁금해 할 만한 사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음으로요.
@Guybrush 안녕하세요. 모든 작품이, 쓰고 있을 때에 속을 실컷 썩였기 때문에, 완성한 뒤에는 애정을 갖는 편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발표하지 못했을 테고요.(주의 : 착각이나 거짓말일지도 모릅니다…)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장편소설 <비밀과 거짓말>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저의 농담 실력에 물이 올랐음에도 그것을 자제하고 살짝 ‘엄근진’으로 썼던 소설입니다^^ 저의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담았고 또 간직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뭔가 이룬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역시 똑같은 질문에 단편집인 <아주 다른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를 꼽은 적도 있군요. 등장인물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썼고 시간과 공간, 관계의 스케일을 넓혔다고 자평하는 소설집입니다만… 그 책이 2014년에 출간되었는데 얼마 뒤 4월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죠. 그 사건과 함께 기억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똑순이 안녕하세요. 실화를 소설로 쓴다면 무엇보다 그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하는 게 중요할 듯하네요. 자기 주장에 치우친 글은 보편적인 설득력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라… 중견작가이지만 저도 소설을 쓰는 게 늘 어렵습니다. 힘을 빼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러나 또 바로 그 점 때문에 소설 쓰기가 재미있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반갑습니다 작가님! 얼룩소에 글쓰며 기쁨을 얻은순간이 많았는데 은희경작가님 께 이렇게 질문을 할수있는 창구가 열린것또한 참으로 행복한일입니다. 저역시 " 새의선물" 을 읽고 팬 이 되었습니다 .출판된지 좀 지나서 저는 읽었습니다! 당시 유럽 배낭여행 중에 이책을 읽으며 나도 소설쓰는 작가가되고싶은 꿈을 가졌는데 꿈은 그야말로 꿈으로 끝나긴했습니다.ㅎㅎ
작가님 께서 이 책이 산사의 절에서 쓰여졌다고 하셨는데 글쓰기 좋은곳이 고립되고 외부와 단절이 된 장소가 더 유리할까요? 저는 해외에서 한국인이 전혀없는 시골에서 살고있습니다. 환경적으로는 글쓰기 좋은곳이라 할수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생각의 자극이 있는 사람들속에 있을때가 일상이야기라도 쓰게 되거든요.
관계의 지도가 지극히 협소하고 아무런 사건이 없는 고요한 곳은 오히려 초보글쓰기 하는사람에겐 도움이 안되는것 같은데 작가님의 조언을 듣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작가님은 지금까지 여러 편의 소설을 쓰셨는데 그중에서 흥행이나 평단의 평가 등과 상관없이 작가님 마음에 가장 드는 소설은 무엇인가요?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muruybi 안녕하세요.
저는 계획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합니다. 새 작품을 쓸 때마다 얇은 노트 한 권에 인물, 사건, 배경(아시다시피 소설 구성의 3요소!)에 대해 자세히 적어가면서 준비를 해요. 인물 관계도도 만들고 배경이 되는 공간도 그려봅니다.
그런데 준비한 그대로 쓰는 경우는 없어요. 그 구상을 기반으로 시작을 하지만 그 단계에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또 많이 좌절합니다. 그러다가 진짜 제가 원하는 방향을 찾게 되면 그런 순간을 영감이 왔다고 표현해요. 일종의 발견, 에피파니죠.
그때부터는 소설 쓰기가 재미있어지고요.
계획이 소용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소설이라는 집을 짓는 데에 재료로 쓰이지는 않았지만, 마치 사다리처럼 제가 원하는 지점에 닿도록 해준 것만으로 기능을 하는 거죠. 처음 구상한 대로 쓰면 받아쓰기 같아서 창작의 재미를 별로 느끼지 못해요. 제가 쓰고자 하는 글을 그대로 옮겨 쓰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탐문을 해가다가 그 너머를 발견하는 순간의 짜릿함이 소설 쓰기의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연재 준비중인 작품은 아직 꼼꼼하게 뼈대를 세우는 단계인데, 그걸 무너뜨리는 영감의 순간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어요.
<또_못 버린 물건들>을 출간한 뒤 ‘또 못 버린 물건들’이 생겼는지 물어보셨는데, 그렇습니다. 그 중 하나가 난다 출판사에서 행사 굿즈로 준비한 작은 돌인데요. 제가 책에 썼던 ‘돌과 쇠를 좋아하는 일’의 마음을 이어가기 위해 만들었다고 해요. 금방 완판되었다고 하던데, 돌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은가 봐요. 돌에 대한 사연들도 많을 텐데, 저도 궁금해집니다, 그분들의 또 못 버린 물건들. ^^
@Jungchae 반갑습니다.
요즘의 행복…글쎄요. 전에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여행 계획을 짤 때’에 행복하다고 느꼈는데요. 요즘은 그런 행복의 기회가 잘 오지 않네요.
오래 전 소설에 이런 구절을 썼었어요. “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행복하다고 느끼고 싶어하므로 끊임없이 행복의 의미를 창안해낸다. 행복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러는 동안 행복에 관계없이 행복에 대한 의미 규정만 많아진다.” 지금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 글을 쓸 때 아마 저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니면 행복을 너무 거창한 것으로 여겼거나.
요즘 저의 행복은 일상이 한결같이 제 곁에 머물러준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해요. 아침에 눈을 떠서 몸을 움직이고 커튼을 열어 날씨를 확인하고 커피를 끓여서 서재에 들어가면 각자 수많은 세계를 담은 책들이 나란히 책장에 꽂힌 채 햇살을 받고 있고…그런 순간 내 삶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정도가 행복 아닐까 싶어요. 물론 제 책의 중쇄 소식을 들을 때 무척 행복하고 지금처럼 제 글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을 때도 기쁩니다^^
@박새우 안녕하세요.
아래의 skylll(로마숫자 같은데…)님도 비슷한 질문을 하셨어요. 우울할 때는 그냥 우울해 합니다. 실컷 우울해 하다 보면 우울의 용량이 바닥나겠죠 뭐. 그 일에 힘을 쏟느라 당연히 글은 쓰지 못해요.
슬럼프에 대해서는 준비된 대답이 있어요. “슬럼프가 오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그녀는 정신이 말을 안 들을 때는 육체를 괴롭히는데, 육체를 혹사시키는 방법은 목적 없이 오래 걷기와 만취 두 가지라고 대답했다.”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제 장편 소설의 한 구절입니다.
저는 매번 새 작품을 쓸 때마다 글이 안 써져서 “왔네 왔어, 이거 슬럼프야” 하면서 호들갑을 떨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걷기는 거의 작품을 구상하는 시기의 루틴이 되었어요. 하지만 글을 쓸 때 술은 전혀 마시지 않습니다. 술이라는 친구가 끼어들면 글은 어둠 속에서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요. 저한테 있어서 글은 사랑하는 술을 버릴 만큼 절대적이고 독점력 강한 폭군이거든요. 아첨을 할 수밖에 없어요.
@김진후 안녕하세요. ‘인생소설이라니, 제가 우쭐해지는군요.
저는 충고를 잘 하지 못합니다. 책 추천조차 망설이곤 해요. 더구나 소설가를 꿈꾸는 지망생들, 분명 누군가는 애정으로 말렸을 텐데(어느 작가의 아버지께서 신춘문예 당선을 기뻐한 다음 곧바로 ‘근데 취직은 언제 할 거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떠오릅니다) 쉽지 않은 길을 택하겠다는 분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작가는 쓰느라 힘들고, 안 알아주고 또 안 팔려서 힘이 듭니다.
하지만 자기 삶을 주도할 수는 있죠. 그 점은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결정적인 메리트라고 저는 생각해요. 모든 작가가 각기 하나씩의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아무런 대표성이 없는 제가 ‘현실적인 이야기’를 드리기는 조심스럽네요.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
유튜브는 자료를 찾을 때나 아이돌 안무를 보고 싶을 때에만 봅니다. 화제가 된 숏폼도 가끔 찾아보고요. 하지만 제가 콘텐츠를 습득하는 방식이나 속도와 맞지 않는 듯해서 자주 보는 건 아니에요. 저의 속도는 아마 원하는 페이지를 펼쳐서 빠르게 혹은 천천히, 건너뛰거나 접어가며 읽는 독서의 습관에 맞춰진 것 같아요. 친구가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을 보내주면 재미있게 보지만 일부러 찾아보게 되지는 않고요. 근데 저 트위터는 중독이에요. 물론 읽는 것만. 만약 거기에 뭔가 쓰게 되면 온종일 붙잡고 있을 것 같아서요.
@QOQO98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저의 첫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와 장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개정판을 냈어요. 둘 다 30대에 쓴 작품들인데요. 교정을 보면서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힘’이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믿는 힘, 저항하는 힘, 그리고 회복하는 힘 모두 말이죠.
한편으로는 그때의 열정이 살짝 경솔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뜻은 아니고요(틀렸다면 개정판에서 고쳤겠죠^^) 주장하는 방식이 좀 단순하지 않은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방식이 지금의 신중한 방식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었어요. 저의 첫번째 책인 <새의 선물>이 지금까지도 대표작으로 꼽힐 때마다 ‘아니, 나는 점점 잘 쓰기 때문에 최근작이 제일 좋은 작품인데 왜 안 알아주는 거야’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는데, 이제 독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젊었을 때의 글이 더 힘 있고 주장이 강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지금 제가 쓰는 글도 마음에 듭니다. 타인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조심스러움이 모호하고 포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넓은 방식의 모색과 관망의 스펙트럼이 있다고 생각해요.
개정판을 내며 든 또 한 가지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저의 질문이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관심사는 조금 바뀌었으려나요? 여전히 사람에 관심이 많고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세계의 질서에 흥미를 느끼지만 이제는 제약이 따르고 기회도 많지 않으니까요. 근데 제가 바뀌었다기보다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고, 저는 여전히 이 생에 진심이라서 그 변화에 근면하게 동참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좋겠네요.
@skylll 안녕하세요.
제가 신인 시절에 작가들이 모이는 술자리에 갔는데요. 누군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글이 좋아지겠군”이라고 대꾸하는 걸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대체 내가 어떤 세계에 발을 딛은 거지? 나는 꿈을 이루어 행복해지려고 작가가 되었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대화는 친밀한 사람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다소 위악적인, 우회적인 위로였습니다.
괴로울 때 글을 쓰곤 하신다는 말씀에 그 일화가 생각나네요.
괴로울 때에 그 괴로움을 털어놓는 글을 쓰신다는 말씀일까요?
사실 저는 직업 작가로서 최상의 작품을 내놓기 위해 늘 괴로움을 느낍니다.(괴로움을 농담 소재로 삼는 건 아닙니다. 진지해요…) 저한테 쓰는 일은 나의 바깥을 공부하고 나의 안에 감춰진 사유를 끄집어내는 일인데, 그게 늘 어렵기만 해서요. 그러므로 책상에 앉아 쓸 때에는 그 밖의 다른 괴로움은 없어야만 쓸 수 있습니다. 컨디션도 좋고 또 잡념을 불러오는 개인적 근심이 없는 상태라야 상상력과 감수성이 안정적으로 가동되는 것 같아요.
마음이 안정되면 좋은 글이 더 나온다는 이야기냐고 하셨는데, 맞습니다. 기고만장하면 잘 쓴다는 말은, 자신감을 가지면 더 집중해서 밀고 나갈 수 있다는 뜻이고요. 표현이 좀 과격했나 봐요^^
은희경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며,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함께 울고 웃으며 성장했어요. 표현할 길이 막막했던 생각과 감정을 늘 참 반갑게 발견했고요. 컬렉션도 모았고 번역본도 친구들에게 틈나는 대로 선물하며 또 토론하기도 했습니다(한국어 단어 몇 가지를 골라서 깨알같이 물어 온 친한 친구의 모습도 선하네요!). 오랜 팬이라 여기서 뵙게 되어 정말 기뻤습니다! 귀한 말들 감격하며 읽다가 '행복한 소설가', '기고만장한 소설가'에 관한 마지막 내용에 공감하며 드리고 싶은 질문이 생겼어요.
저는 예술학교의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같이 우리가 속한 이곳을 안전하고 평등한 공간으로 변화시키자 제안하며, 재능 없다고 쪼그라들지 말고 계속 끈질기게 버티면 고수가 된다고, 그 버텨내는 힘은 단단한 일상의 루틴에서 나온다는 조언도 늘 해오고 있어요.
그리고 종종은 더 날카로운 시선을 갖고 싶어서, 혹은 독특한 소재를 찾으려고, 더 정확하게 세상의 바닥을 봐야겠다는 이유 등으로 자신을 위험에 내던지거나 자꾸 더 힘들게 하는 학생들을 만납니다. 그 열정은 참으로 숭고하지만, 그들을 믿고 그 의사를 존중하자 하면서도 참 말리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 젊은 학생들에게 선배로서 해주고 싶으신 조언, 혹은 그런 그들을 마주하는 저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 있으실까요
@muruybi 안녕하세요.
저는 계획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합니다. 새 작품을 쓸 때마다 얇은 노트 한 권에 인물, 사건, 배경(아시다시피 소설 구성의 3요소!)에 대해 자세히 적어가면서 준비를 해요. 인물 관계도도 만들고 배경이 되는 공간도 그려봅니다.
그런데 준비한 그대로 쓰는 경우는 없어요. 그 구상을 기반으로 시작을 하지만 그 단계에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또 많이 좌절합니다. 그러다가 진짜 제가 원하는 방향을 찾게 되면 그런 순간을 영감이 왔다고 표현해요. 일종의 발견, 에피파니죠.
그때부터는 소설 쓰기가 재미있어지고요.
계획이 소용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소설이라는 집을 짓는 데에 재료로 쓰이지는 않았지만, 마치 사다리처럼 제가 원하는 지점에 닿도록 해준 것만으로 기능을 하는 거죠. 처음 구상한 대로 쓰면 받아쓰기 같아서 창작의 재미를 별로 느끼지 못해요. 제가 쓰고자 하는 글을 그대로 옮겨 쓰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탐문을 해가다가 그 너머를 발견하는 순간의 짜릿함이 소설 쓰기의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연재 준비중인 작품은 아직 꼼꼼하게 뼈대를 세우는 단계인데, 그걸 무너뜨리는 영감의 순간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어요.
<또_못 버린 물건들>을 출간한 뒤 ‘또 못 버린 물건들’이 생겼는지 물어보셨는데, 그렇습니다. 그 중 하나가 난다 출판사에서 행사 굿즈로 준비한 작은 돌인데요. 제가 책에 썼던 ‘돌과 쇠를 좋아하는 일’의 마음을 이어가기 위해 만들었다고 해요. 금방 완판되었다고 하던데, 돌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은가 봐요. 돌에 대한 사연들도 많을 텐데, 저도 궁금해집니다, 그분들의 또 못 버린 물건들. ^^
@박새우 안녕하세요.
아래의 skylll(로마숫자 같은데…)님도 비슷한 질문을 하셨어요. 우울할 때는 그냥 우울해 합니다. 실컷 우울해 하다 보면 우울의 용량이 바닥나겠죠 뭐. 그 일에 힘을 쏟느라 당연히 글은 쓰지 못해요.
슬럼프에 대해서는 준비된 대답이 있어요. “슬럼프가 오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그녀는 정신이 말을 안 들을 때는 육체를 괴롭히는데, 육체를 혹사시키는 방법은 목적 없이 오래 걷기와 만취 두 가지라고 대답했다.”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제 장편 소설의 한 구절입니다.
저는 매번 새 작품을 쓸 때마다 글이 안 써져서 “왔네 왔어, 이거 슬럼프야” 하면서 호들갑을 떨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걷기는 거의 작품을 구상하는 시기의 루틴이 되었어요. 하지만 글을 쓸 때 술은 전혀 마시지 않습니다. 술이라는 친구가 끼어들면 글은 어둠 속에서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요. 저한테 있어서 글은 사랑하는 술을 버릴 만큼 절대적이고 독점력 강한 폭군이거든요. 아첨을 할 수밖에 없어요.
@오혜민 안녕하세요.
오랜 팬이시라니 정말 고맙고 반갑습니다! 예술학교의 학생들을 만나고 계시군요.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을 위험에 내던지거나 자꾸 더 힘들게 하는 학생들…정말 고귀하지만 두렵기도 하네요. 저 같은 배짱 없고 나약한 작가가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요. 그냥 나약한 작가로서의 경험을 말씀드려볼게요.
저는 위태로운 일에 뛰어들기보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한 상상력과 감각을 연마하는 일을 제법 치열하게 했습니다. 고독에 대해서 쓸 때 필요한 건 치명적인 고독의 경험이 아니라 관습적인 일상 속에서조차 고독을 발견하는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밀란 쿤데라 식으로 말하면, 예술가는 낯선 여인의 등장이 아니라 익숙한 여인의 낯선 얼굴에 경악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상, 영감을 어디에서 얻냐는 질문에 “30퍼센트 정도의 직접 경험과 70퍼센트 이상의 간접 경험을 통해서요. 저의 간접 경험이란 독서입니다”라고 대답하는 나약한 작가의 변명이었습니다.
@최서우 안녕하세요. 제가 한국인이 전혀 없는 해외의 시골에 사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죄송한데, 소설은 쓰지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곳에서 석 달을 보낼 기회가 있다면 당장 달려갈 것입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 그러니까 저의 경우 소설이란, 사람들을 관찰하고 겪으며 생겨나는 것인데, 그럼에도 집중적으로 쓰기에는 고립된 장소가 좋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만약 고립이 저의 생활조건이었다면 저는 거기 대해 뭔가 쓸 것 같기도 합니다. 제한된 관계 속에서 더욱 심도 있게 인간의 본질을 파고들 수도 있고, 사건 중심이 아닌 미세한 분위기나 디테일로 소설의 밀도를 높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앨리스 먼로가 오랫동안 고향 마을에 살면서 그곳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주로 썼듯이 말이죠. 초보 글쓰기를 하신다니, 잘 아는 작은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싶네요. 실은 저도 글이 안 풀릴 때 그렇게 합니다. 가까운 친구에게 그 친구가 궁금해 할 만한 사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음으로요.
@Guybrush 안녕하세요. 모든 작품이, 쓰고 있을 때에 속을 실컷 썩였기 때문에, 완성한 뒤에는 애정을 갖는 편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발표하지 못했을 테고요.(주의 : 착각이나 거짓말일지도 모릅니다…)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장편소설 <비밀과 거짓말>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저의 농담 실력에 물이 올랐음에도 그것을 자제하고 살짝 ‘엄근진’으로 썼던 소설입니다^^ 저의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담았고 또 간직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뭔가 이룬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역시 똑같은 질문에 단편집인 <아주 다른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를 꼽은 적도 있군요. 등장인물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썼고 시간과 공간, 관계의 스케일을 넓혔다고 자평하는 소설집입니다만… 그 책이 2014년에 출간되었는데 얼마 뒤 4월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죠. 그 사건과 함께 기억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Jungchae 반갑습니다.
요즘의 행복…글쎄요. 전에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여행 계획을 짤 때’에 행복하다고 느꼈는데요. 요즘은 그런 행복의 기회가 잘 오지 않네요.
오래 전 소설에 이런 구절을 썼었어요. “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행복하다고 느끼고 싶어하므로 끊임없이 행복의 의미를 창안해낸다. 행복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러는 동안 행복에 관계없이 행복에 대한 의미 규정만 많아진다.” 지금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 글을 쓸 때 아마 저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니면 행복을 너무 거창한 것으로 여겼거나.
요즘 저의 행복은 일상이 한결같이 제 곁에 머물러준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해요. 아침에 눈을 떠서 몸을 움직이고 커튼을 열어 날씨를 확인하고 커피를 끓여서 서재에 들어가면 각자 수많은 세계를 담은 책들이 나란히 책장에 꽂힌 채 햇살을 받고 있고…그런 순간 내 삶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정도가 행복 아닐까 싶어요. 물론 제 책의 중쇄 소식을 들을 때 무척 행복하고 지금처럼 제 글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을 때도 기쁩니다^^
@김진후 안녕하세요. ‘인생소설이라니, 제가 우쭐해지는군요.
저는 충고를 잘 하지 못합니다. 책 추천조차 망설이곤 해요. 더구나 소설가를 꿈꾸는 지망생들, 분명 누군가는 애정으로 말렸을 텐데(어느 작가의 아버지께서 신춘문예 당선을 기뻐한 다음 곧바로 ‘근데 취직은 언제 할 거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떠오릅니다) 쉽지 않은 길을 택하겠다는 분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작가는 쓰느라 힘들고, 안 알아주고 또 안 팔려서 힘이 듭니다.
하지만 자기 삶을 주도할 수는 있죠. 그 점은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결정적인 메리트라고 저는 생각해요. 모든 작가가 각기 하나씩의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아무런 대표성이 없는 제가 ‘현실적인 이야기’를 드리기는 조심스럽네요.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
유튜브는 자료를 찾을 때나 아이돌 안무를 보고 싶을 때에만 봅니다. 화제가 된 숏폼도 가끔 찾아보고요. 하지만 제가 콘텐츠를 습득하는 방식이나 속도와 맞지 않는 듯해서 자주 보는 건 아니에요. 저의 속도는 아마 원하는 페이지를 펼쳐서 빠르게 혹은 천천히, 건너뛰거나 접어가며 읽는 독서의 습관에 맞춰진 것 같아요. 친구가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을 보내주면 재미있게 보지만 일부러 찾아보게 되지는 않고요. 근데 저 트위터는 중독이에요. 물론 읽는 것만. 만약 거기에 뭔가 쓰게 되면 온종일 붙잡고 있을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