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난 디아스, <트러스트> 리뷰: 그대들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오랜만에 본가에 갔더니, 어머니께서 이번 달 독서모임 주제라며 <트러스트>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중학생 때 학교에서 학부모 독서모임을 주최했었다. 그 때 어머니께서 독서모임에 참여하셨던 것은 알고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독서모임에 나가고 계신 줄은 몰랐다(그 때의 중학교 학부모들과 아직도 함께 하시는지는 모르겠다). 하긴, 성인이 되고 나서는 본가에 2달에 1번 갈까 말까였으니까. 그리고 내가 집에 있을 때 어머니께서는 주로 티비를 보거나, 주무시거나, 요상한 주식공부를 하시기만 하셨지, 책을 읽는 모습을 내 앞에서 보여주신 적은 별로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가 약간은 무식한 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평소에 기억하는 나의 어머니는 '여행을 좋아하고, 거의 대부분 손해를 보는 주식투자를 하고, 언제나 친구들을 만나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이제 슬슬 나이가 들어서 감정기복이 조금씩 생기는 50대 아줌마'였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쩌면 기억하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도 있었다. 대략 10년쯤 전에, 다락방의 책꽂이들을 뒤적거리다가 어머니께서 학생 시절에 유명한 시들을 옮겨 적고 그림을 그린 노트를 발견했다. 아, 어머니도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즐겨 듣고, 말랑말랑한 소설과 시를 읽으며 좋은 구절을 노트에 옮겨 적던 문학소녀였구나. 내가 전혀 모르던 모습이었다.
그 때 어머니의 시 노트를 발견한 이후 한동안 어머니의 '문학소녀'와 같은 모습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요즘도 동네 아줌마들과 독서모임에 참여한다는 말을 듣고, 그리고 햇빛이 내려쬐는 창가 흔들의자에 앉아서 '이 책 빨리 읽어야 해.'라는 말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맞다. 우리 엄마 문학소녀였지.'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 실제 어머니의 모습, 다른 사람들이 보는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가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