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남의 집 제사를 차려주는 날, 조선시대 양반과 서민의 추석도 이러진 않았습니다!

율무선생
율무선생 · 사회는 빛과 그림자의 산물이다
2022/09/04
가끔 이맘때가 되면 우울해지곤 합니다. 저희 엄마의 고생이 생각나서요.
추석 시즌 처럼 명절 시즌이 다가오면 즐거운 빨간 날을 즐기면서 오순도순 화목한 가정들도 있을 것입니다만, 저희 가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 속 추석이란?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10대 시절까지, 저희 집은 명절되기 며칠 전부터 부모님의 싸움으로 인해 항상 갈등이 오고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명절 시즌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친인척이 모이는 큰집 개념도 아니었고, 조부모님, 저의 부모님, 삼촌이 끝인데,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식사를 차리고, 아무도 먹지 않을 추석 전용 전 음식을 만들며 8시간은 넘도록 하나 있는 며느리를 알차게 부려먹은 저의 친할머니가 생각납니다.

친할아버지는 명절때마다 강경하게 "추석은 추석답게 지내야지!" 라고 말하시며 명절 음식 중 하나라도 빠지면 크게 노하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힘들어서 다음날이 되면 앓는 엄마의 모습을 보곤 10살도 안 된 나이부터 엄마의 일을 돕곤 했습니다. 그렇게 남의 집 귀한 딸이었던 저의 엄마는 14년은 넘도록 남의 못된 집안에 시집와서 몸이 아프도록, 만성적으로 닳도록 굴려집니다.

14살이 되던 해, 저는 엄마를 돕지 않는게 
엄마의 시댁 간 자립을 돕는 길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4살이 되던 해, 저는 엄마가 차례 음식을 차리는 것을 돕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양반집도 조촐한 차례상을 차리며 끝내는데, 양반도 아닌 사람들이 양반 흉내를 내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명절 때마다 엄마를 돕게 되면, 조부모님은 "철 들었다, 기특하다." 며 내심 손녀의 행동을 '동네 자랑거리' 로 여기기 시작하는 걸 보며, 알 수 없는 이질감에 잠겨 기분이 안 좋아지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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