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베다니로 가는 길(7)>: 인생의 굴레]

안순우
안순우 · 시와 소설을 사랑합니다.
2024/05/02
<1>
해거름 때가 되자 동네 한가운데 있는 우물터가 번잡해지기 시작했다. 물지게를 지고 나온 사내들, 합석 양동이를 이고 나온 아낙네들, 채전 밭에서 푸성귀를 뜯어서 씻으러 나온 여자들, 또 물지게 가지 보다 더 작은 사내아이들도 물지게를 지고나왔다. 우물 하나에 두레박은 여러 개다. 어떤 집 두레박은 군인 철모 양귀퉁이에 구멍을 뚫어서 만들었고 또 다른 집 두레박은 플라스틱 두레박이다. 쇠로 만든 두레박은 물속에 잘 가라앉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든 두레박은 잘 가라앉지 않아서 한참이나 밧줄을 흔들어댄다. 동네의 몇몇 집은 우물에 물을 길러먹는 일이 귀찮아서 집안에 관정을 뚫어서 우물이나 펌프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마을 공동우물을 사용하고 있다. 김치성의 집은 지대가 높고 또 암반 위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관정을 뚫어 우물을 팔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느 가정처럼 공동우물을 이용하고 있다.

김삼열은 물지게를 지고서 오르막을 몇 번씩이나 오르내리고 있다. 부엌에 있는 스무 말이나 들어가는 큰 물두멍을 가둑 채우려면 아직도 몇번은 더 오르내려야 한다. 바지는 양동이의 물이 출렁이고 튀어서 젖었다. 대문에 들어서서 넓은 마당을 지나고 물지게를 부엌 앞에 내려놓았다. 양동이 표면에는 차가운 기운으로 물방울이 이슬처럼 맺혔다. 물이 가득 찬 양동이를 들고서 물두멍 속으로 연거푸 쏟아 부었다. 물두멍은 이제 거의 반이나 찼을까? 문득 부엌에 서있는 아내를 바라보니 말없이 손가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아니! 왜 손가락을 쥐고 있소?
또 칼에 베었소?”
벽을 향하여 가만히 서있던 이영숙은 뒤돌아보면서 손가락을 움켜쥐고 있다. 손에는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김삼열은 양동이를 내려놓고 부리나케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녀는 몹시 창백한 얼굴이다.
“아니! 지금 벌써 몇 번째요!
조심하지 않고....이리 좀 봅시다!”
이영숙은 오른손으로 왼편 중지 손가락을 누르고 있었지만 피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김삼열은 얼른 옆에 있는 마른 행주를 이빨로 물어 찢어서 아내의 손가락을 동여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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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멸성과 불가해성을 고민합니다. 가장 존귀하지만 또 가장 부패한 인간 연구에 천착하여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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