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AM, Movie Alone] 박석영의 꽃3부작-소녀에서 어른으로, 길에서 다른 길로
2024/08/30
고속터미널 꽃시장과 도보로 닿는 거리의 은행에 근무하던 시절, 잠시 영업점을 거쳐가는 PB로 일하며 매일 나를 찾는 고객에게 색다른 인상을 주고 싶어 종종 꽃을 사들고 출근해 화병에 담아내곤 했다. 플라워아트 관련 해외잡지를 따라하거나 더 마음이 내키면 간단히 레이아웃과 색감을 스케치해서 나만의 디자인을 해보기도 했다. 모방의 대상이 뚜렷할수록, 스케치가 정밀할수록, 결국 화병 하나를 붙들고 서로 얽혀 모양을 낼 수 밖에 없는 꽃꽃이는 실패하기 쉽상이었다. 오히려 늘 먹는 반찬에 깨소금을 뿌려 꾸밈없는 멋을 내듯 무심코 꽃다발을 던지듯 작업한 날의 결과물이 훨씬 그럴듯했다. 꽃 뿐만은 아닐 것이다. 자연에 속한 모든 것들은 그저 첫 자리, 누군가의 부름에 따라 놓여진 그 자리일 때 아름답고, 또 의미가 있다. 그리고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2015년부터 매년 제작, 공개되어 꽃3부작으로도 불리는 박석영 감독의 연작 <들꽃>, <스틸플라워>, 그리고 <재꽃>. 영화를 보기 전에는 어떤 사전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무지의 상태를 고집하는 습관 때문에, 이런 시리즈 방식의 제작이 원래 감독의 의도였는지, 아니면 우연이 이어진 필연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어느 한 작품만 봐서는 영화가 무얼 말하려는지의 레벨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가급적 세편을 모두 감상하고 색다른 공감을 음미해보길 바란다. 어떤 순서로 봐도 상관 없다.
왜 하필 소녀들인가?
일전에 다른 작품 <바람의 언덕>을 보고 여성지향의 남성감독이라고 부른 바 있다. 꽃3편을 본 후에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박감독의 영화에는 항상 소녀들이 등장한다. 도플갱어처럼 상처와 처한 환경이 닮은 두 명의 소녀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자매애(Sisterhood)로 얼핏 보일 수 있지만 착각이다. 감독의 시선은 항상 빛을 향해 가고 있다. 빛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연출하기 위해 어둠을 들이고, 가능하면 그 어둠을 더 깊고, 더 길게 만들어 곧 등장할 빛을 더 빛나보이게 한다. 그러니 박감독의 초창기 작품이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