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문학과 문학상
2024/04/04
1. 일제강점기 치하의 조선 문단에서 생긴 일
1939년 10월 29일 식민지 조선의 경성 부민관에서 250여 명의 문인이 모여 조선문인협회를 만들었다. 발기인은 이광수, 김동환, 김억, 유진오, 이태준 등이었다. 여기에 일본인도 있었다. 사토 키요시는 시인이자 영문학자로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다.
같은 해 12월 5일에 이광수는 당국의 유력인사들과 사업계획을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때 안건으로 대두된 것 중 하나가 “문예상의 설정”이었다. 이 계획은 흔쾌히 받아들여졌다.
국문(일문), 언문(한글)을 불문하고 반도에서 발표된 문학 작품 중 우수한 것을 골라서 수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식민지 조선을 대상으로 하는 상은 조선문인협회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먼저 시행하게 되었다. 1939년 11월 <모던 일본> 잡지에 ‘조선예술상’ 제정이 공고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모던일본사를 맡고 있던 마해송의 청에 의해서 기쿠치 간이 만들었다. 기쿠치 간은 신진작가들을 위한 아쿠타가와상, 나오키상과 더불어 선배 작가들을 위한 기쿠치간상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조선예술상은 모든 작가를 대상으로 하였으므로 기쿠치간상과 성격이 비슷했다.
조선예술상은 여러 예술 분야가 대상이었는데 문학의 경우 심사를 아쿠타가와상 위원회(후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다)에 위촉하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1940년 3월 제1회 수상자로 이광수가 선정되었다. 이후 이태준, 이무영, 주요한, 박종화 등 한국 문학계의 내로라 하는 작가들이 이 상을 받았다.
‘조선예술상’의 경우 제3회부터는 조선문인협회가 심사를 했지만, 이때부터는 한글로 쓴 작품이 제외되었다. 결국 문학을 통한 식민 통치의 내선일체화를 꾀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조선에서 살아간 작가들은 식민지라는 한계를 뛰어넘어서 자신들의 지위를 격상시키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렸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조선문인협회는 끝내 자신들의 이름으로는 상 하나를 만들 수 없었다.
문학은 기록이고 기록은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