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과 상상] <색, 계> ‘빗장’ 풀린 욕망에 관하여

허남웅
허남웅 인증된 계정 · 영화평론가
2024/05/01
1942년 일제강점기의 중국 상하이. 부유한 저택 안에 부인들이 모여 마작 게임에 한창이다. 이들은 게임을 즐기면서 남편의 승진과 홍콩에서 수입해 온 스타킹, 여자들이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법한 다이아몬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게임에 몰두하랴, 대화 진행하랴, 시선과 입놀림이 분주한 그녀들을 쫓는 카메라의 움직임도 덩달아 바쁘다. 그 속에서 막부인(탕웨이) 만이 조용히 튀지 않게 게임과 대화에 집중한다.

곧 이은 분위기 반전. 저택의 주인이자 정보부 장관인 이(양조위)가 퇴근 후 모습을 드러내자 막부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과연 막부인과 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이의 부인은 온종일 마작이냐며 조용히 타박하는 남편 이에게 왜 다이아몬드를 사주지 않느냐며 투정을 부린다. “무거운 거 껴봐야 마작하기만 불편하지.” 그와 동시에 막부인은 약속이 있다며 판을 깨고 일어난다. 이 또한 약속을 이유로 집을 나선다.

짧은 줄거리에서 언급한 승진과 스타킹과 다이아몬드는 막부인과 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다. 이는 대만에서 머물던 당시 대장이었다가 지금은 장관의 지위에 올라 상하이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는 대만 출신으로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나고 상하이가 일본에 점령되자 일본군에 붙어 동족을 처단한 매국노다. 대장에서 장관으로 ‘승진’한 이는 독립군에게 있어 처단해야 할 1순위 인물인 셈이다.

이의 처단의 선봉에 선 인물이 바로 막부인이다. 지금은 수입업을 하는 남편을 둔 귀부인 행세를 하고 있지만, 그녀는 실은 평범한 여대생 왕치아즈다. 영국으로 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홍콩으로 피신 유학을 온 그녀는 연극부에 가입한다. 민중 연극을 무대에 올리며 주인공으로 출연하던 날 관객들의 환호에 조국의 독립을 향한 애국심이 마음속에서 뜨겁게 불타오른다.
이참에 왕치아즈는 연극부 단원들과 함께 더 큰 일을 도모하기로 의기투합한다. 연기에 능하고 미모가 뛰어난 왕치아즈가 귀부인으로 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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