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호랑이보다무서운겨울손님] 고현정을 위한 고현정의 영화​에 등장한 헤밍웨이

안치용 인증된 계정 · 작가, 영화평론가, ESG 담당 교수
2023/05/04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영화의 시작은 뒤통수였다. 
극중 경유로 분한 이진욱이 옆으로 드러누워 까치집을 한 채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뒷모습. 왜 뒤통수가 시작이었을까. 재미, 의미, 감각 등 여러 기준에 따른 정말 많은 선택이 가능했을 텐데, 이광국 감독의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호랑이, <노인과 바다> 등의 핵심 모티프도 영화 속에서 살짝 아귀가 맞지 않게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일부러 아귀가 맞지 않도록 의도한 영화적 장치가 작동했다기보다는 맞추려고 애썼지만 어긋난 모종의 낭패감. 정치하고 일관되게 밀고가 높은 완성도를 보인 영상에 비해 스토리가 성겨서, 그래서 더 아쉬웠다. ​
영상과 고현정만으로도 뒤통수의 앞쪽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어느 정도는 달랠 수 있었던 게 기대치 않은 소득이었다고 할까.​

호랑이​
제목에도 들어있는 호랑이는 이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탈출한 어느 겨울날, 여자 친구(현지ㆍ류현경) 집에 얹혀살던 경유(이진욱)는 여자 친구의 부모님이 올라온다는 말에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짐을 간단하게 챙겨 집을 나선다. 변변한 직업 없이 대리운전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라 여자 친구 부모님께 당당하게 인사드릴 수 없었던 경유는 이틀 뒤에 돌아올 요량으로 단촐한 캐리어를 들고 어디론가 향한다. 관객이 곧 알게 되듯이 여자 친구의 부모님 운운은 무능한 경유를 떠나보내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아침밥을 한 상 잘 차려 먹이고 “호랑이 조심하라”고 걱정하며 배웅하는 장면은 처음에도 그렇지만 나중에 더 애틋하게 기억된다.​
극중 류현경과 이진욱의 사랑은 가난한 이들의 사랑이다. 류현경은 대형 서점의 비정규직 점원으로 추정되고, 이진욱은 고정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이 대리운전을 거의 본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프레카리아트이다. 사랑에서 어쩌면 호환ㆍ마마보다 더 무서운 게 가난이다. ​
여자 입장...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ESG연구소장으로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청년협동조합지속가능바람 이사장으로 활동한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ㆍ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이고,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냈다. 약 40권의 저역서가 있다.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기자.
96
팔로워 98
팔로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