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카무이」를 보고

Orca
Orca · 제국에 관한 글쓰기
2024/03/24
   골든카무이ゴールデンカムイ(2014-2022)를 정신 없이 봤다. 메이지 말기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패자의 정신사精神史. 러일전쟁의 PTSD 환각 체험이기도 하고, 보신전쟁戊辰戦争의 패배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멸망'한 아이누アイヌ 민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역사의 패배자들을 온통 끌어모아 한 편의 활극을 버무려냈다. 일본이 승승장구하는 시절의 이야기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군대와 전쟁 체험은 많은 개개의 병사들을 인격적으로 붕괴시켰다. 승리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점을 전후 배상의 측면에서부터 개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물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골든카무이는 확실히 흔해 빠진 전쟁 포르노에 불과하다. 전쟁을 끔찍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다지 끔찍해보이지 않는다. 물론 시체와 피와 내장과 죽음들은 물릴 정도로 계속 나오지만, 거기엔 어떤 산뜻한 쾌감조차 있으며, 깔끔하고 우아하게 잘 포장된 다기茶器 선물 세트와 같은 정결함은 끝끝내 남는다. 포르노는 문화인들이 곧잘 사용하는 멸칭이지만 반드시 그렇게 이해할 필요는 없다. 소위 포르노가 흥분성 마약이라면 소위 일류 문학이란 안정성 마약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러일전쟁의 PTSD 문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는데 이 점을 발굴하고 널리 알렸다는 데 골든카무이의 공적이 있다. 전쟁은 현실감각을 앗아간다. 전장에서 살다가 제대하고 돌아온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까닭은, 민간 사회의 현실이 참전장병들에게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꾸로 전쟁의 현실이 민간인들에게 비현실적임을 의미하기도 했다. 따라서 총력전 후에는 항상 '현실이란 무엇인가'하는 것이 사회의 암묵적인 화제가 되어왔다.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고민했던 이들은 전쟁의 리얼한 모습을 찾아헤맸다. 2차대전 직후에 문학, 미술, 사진 등 논단 전반에서 리얼리즘 논쟁이 벌어졌던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러일전쟁 후에도 '자연주의 논쟁'이라는, 이름만 다른 이슈가 불거졌다. 자연주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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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6년, 방공통제사 3년, 석사 생활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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