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남긴 밥을 먹는다는 건

루시아
루시아 · 전자책 <나를 살게 하는> 출간
2024/02/14
 
인연이라면 모름지기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가 당연한 거라 믿었으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대까지만 해도 가능할 거라 굳게 믿었다만 30이 되면서부터 아무래도 운명 같은 만남은 나를 비켜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씩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여자 나이의 앞자리가 2일 때와 3일 때는, 내가 봐도 남이 봐도 숫자가 주는 느낌이 완연히 다르다. 자연스러운 만남이 어렵다면 인위적인 만남이라도 가져야겠기에 선을 봤다. 21세기에 선이라니... 주선자 없이 장소를 정해 둘이서만 만났으니 소개팅이라고 우겨본다.


낯가림을 하는 나와, 말솜씨가 유려하지 않은 그와 둘이 보내는 시간. 심심할 줄 알고 '적막'이 찾아와 함께 하지만 역시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침묵은 금이다'를 시전하고 있었다. 나름 격식 있는 자리라 이틀 전에 구매해 갖춰 입고 나간 흰 셔츠는 볼륨감 있는 바디라인을 살리기 위해 몸에 딱 붙는 사이즈였으니 가슴께 붙어 있는 단추는 지금 막 튕겨 떨어져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겨우 붙어 있는 형국이었다. 둘이 약속이나 한 듯, 그도 멋진 슈트를 입고 나왔는데 기본 호감형 인상에 수트빨은 더욱 플러스 점수를 주는 요인이 되었다. 한마디로 그는 멋있었다.


커피숍에서 만나 커피를 몇 모금 홀짝이며 둘이서 몇 마디 나누다 식사를 하러 가자고 일어났다. 그 근처 마땅히 아는 곳이 없는 차에 눈에 들어온 아웃백에서 칼질을 좀 하다가 영화관으로 가서 영화를 보고 나왔다. 멜로 영화를 본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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