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에모2] 할머니와 할미의 본질은 사랑이었다.
2023/06/15
주중 할미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한 날은 24개월을 갓 지난 손자, 민준이가 태어 난 날과 같이 간다.
민준이는 온통 할미의 기쁨덩어리이다. 어쩌면 한 맺힌 결핍덩어리인 할미에게는 더없는 치료제이고 비타민이다. 눈만 뜨면 재롱이 늘어나는 민준이의 귀여움은 할미를 춤추게 한다. 미국 간 딸도 거의 매일 조카 민준이와 영상통화를 한다. 고모랑 페이스 톡을 하는 동안 손자는 절대 집중이다. 아직 말은 못하지만 그 표정만은 고모를 녹이고도 남는다.
그 고모가 자랄 땐 군데군데 애정결핍으로 뭉쳐있었다. 엄마의 사랑보다 할머니의 편견이 더 크게 자리잡았고, 그 흔적은 오빠에게까지 전가되었다.
그 고모가 자랄 땐 군데군데 애정결핍으로 뭉쳐있었다. 엄마의 사랑보다 할머니의 편견이 더 크게 자리잡았고, 그 흔적은 오빠에게까지 전가되었다.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오빠가 없었으면 하기도, 가끔 할머니가 없어졌으면 하기도 했다.
악순환된 딸의 애정결핍, 그 시작은 어디였을까.
아들과 딸은 연년생이다. 둘은 잘 놀다가도 싸우면 둘 다 헐크가 된다. 여기에 불붙히는 할머니가 어김없이 등장해 손자편만 든다. 어릴 적부터도 엄마가 없는 시간엔 할머니의 손자사랑은 더 유별났다. 가끔 이성을 잃기도 한다.
"맨날 오빠만 생각하고, 내가 산 사탕까지 몰래 훔쳐서 오빠한테 주고, 내가 다 아는데 할망구가 거짓말까지 했어."
어느 날, 딸은 화가 단단히 나 있다.
그 때가 국민학교 6학년이었던 딸은 불만이 생기면 유일하게 사탕으로 풀었다. 사탕 못 먹게 한 엄마 몰래, 자기 방 책상밑에 숨겨 놓은 사탕을 시어머니인 할머니가 몰래 빼서 손자에게 주었던 거다. 입에 넣었던 사탕까지 오빠한테 빼앗긴 느낌이었을 딸의 심정을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딸과 같은 방을 쓰는 것부터 할머니랑 시시콜콜 다툼이 끊어지지 않는다.
시어머니와 철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세대차, 성격차, 자라 온 환경 차이 이 세 가지만 해도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충분하다. 그래도그렇지, 데려 온 자식처럼 손자와 손녀를 드러나게 차별하는 건 철여도 화가 치민다. 한두 번이 아니다. 딸은 오죽하랴 싶어 어머님이랑 다투고 나면 늘 가슴 아팠다.
홀로 된 후 아...
[합평]
결핍의 극복이라는 서사는 진부한 소재이면서도 늘 새롭고 인상적이다. 결핍은 인지하고 방향을 틀던, 극복하여 뛰어넘던, 새로운 페이즈로(phase)의 돌입을 이끌어 낸다. 삶에서 인지되는 몇 안되는 삶의 계단에는 늘 결핍이 함께한다. 극복할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결핍은 우리에게 늘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나아감을 느낀다. 진부한 소재임에도 늘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는 이유다.
글쓴이의 딸은 결핍에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할머니의 편애로부터, 정신나간 선생의 체벌로부터 다시 본인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심지어는 극복해 나간다. 그것도 결핍보다 더 큰 주변의 사랑을 흡수하면서.
또한, 이 서사는 본인이 직접 말하는 서사가 아닌, 어머니의 입장에서 풀어낸 서사라는 점이 눈에 띈다. 딸의 결핍은 오롯이 그녀만의 결핍이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마찬가지로 결핍이었음을 글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결핍은 본인 스스로 뿐만 아니라 관계를 통해 관찰되고 극복되고 서술될 수 있는 하나의 생명력을 지닌 서사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할머니의 본질이 사랑이었다'는 마지막 말에는 조금 더 재료가 필요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글의 내용상 할머니의 편애는 서사의 주인공인 딸이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추측해보면, 지금 할미로서 느끼는 글쓴이의 감정이 딸의 '할머니'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뉘앙스인 것 같은데, 아쉽게도 이 글에서는 그 부분이 잘 조명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딸의 결핍이 해피엔딩'이었다는 결말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섣부르다는 인상이 들기도..
[합평]
청출어람, 점입가경.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사자성어입니다. 아직 할머니가 되어보지 않아서 '할머니와 할미'의 사랑은 어떤 느낌일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시엄니와 친정엄마가 보여주고 실천한 그 사랑을 짐작할 뿐입니다.
'얼에모2'의 주제 내용에서 자신이 아닌 딸의 결핍을 바라보는 엄마의 글이어서 조금 예외적이었어요. 그 예외가 철여님의 자유자재, 다재다능으로 확산되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재밌게, 뜻밖에, 혹은 신선하게. ;)
그래서 뜻밖에 학교폭력 내용의 글을 읽고 잠시 말문이 막히기도 했어요. 더구나 그게 학생과 학생이 아닌 교사와 학생이라니, 이게 정말 실화인가 싶기도 했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40대 어느 시절에 시민단체인 *교육학부모회에서 제가 몇 달 일할 때 무수히 접수되는 학교폭력 사례에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들이 비일비재했다는 걸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딸 옆의 할머니와 손자 옆의 할미는 세대를 넘어 이렇게 달라졌다는 게 실감납니다. 빠른 속도감으로 읽히게 하는 아찔한 내용, 담담한 표현은 그래서 독자의 감정을 오르내리게 합니다. 따님의 복수는 너무나 지혜로운 자기만의 방법으로 아주 통쾌하게 무찔렀습니다. 사업으로 정신없이 바쁜 엄마의 '본질'을 이미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멋진 복수로 여러사람에게 해피엔딩을 느끼게 하는 군요.
철여님의 힘센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합평]
손자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고모인 '딸'의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글을 읽어나가며 제목과 내용간의 관계를 찾아나가려 했습니다. 딸의 이야기는 할머니로부터 초래된, 그리고 바쁜 부모님으로부터 시작된 하나의 애정결핍. 그렇다면 할머니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글 전반에서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게 되었습니다.
글에서는 '나'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조금은 절제된 감정들을 통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엄마로서 딸을 바라보는 그 이야기에서 절제된 감정은 보다 글이 깔끔하게 느껴지는 효과로 이어집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 따님의 모습에서는 감탄을 자아내게 되었습니다. 아마 본래 올곧은 분이었기에, 그래서 힘든 상황에서도 올곧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었겠지요.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 이번에는 시간 부족으로 평소와는 달리 댓글로 합평을 하게 되었습니다ㅠㅠ
손자를 돌보며 철여님 자녀들의 어린시절, 혹은 철여님이 자녀를 키웠던 그 시절이 더 자주 많이 떠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결핍'이라는 글감을 두고 따님의 어린 시절이 크게 다가왔을 것 같고요.
결핍이 곧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 따님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그만큼 결핍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그러모았을 것 같고요.
그런 따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모든 것을 다 도와줄 수는 없는 엄마의 마음이 엿보이는 글이라 생각해요.
'할머니와 할미의 본질은 사랑이었다'는 부분에서 할머니와 할미를 조금 더 드러내주면 어떨까 생각해요. 따님에게 할머니가 있었고, 민준이에게 할미가 있어요. 할미와 할머니를 같은 위치에 두고 둘의 공통점 또는 차이점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면 이 둘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결론이 조금 더 쉽게 다가올 것 같아요.
따님도 글을 쓰시다니요! 글쓰는 모녀 멋집니다!!
@나철여
[합평]
'할머니'를 타이틀로 하지만, 딸이 주인공인 글이다. 행복하지 못했던 성장과정을 통해 딸에게 어떤 결핍이 있었는지,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를 친할머니, 장사를 했던 시절, 머리를 깎고 복수를 향한 일념으로 공부에 올인하는 딸의 모습을 통해 드러낸다.
글을 읽으며 들었던 느낌은 '딸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할머니의 본질은 사랑이었고, 딸의 결핍은 해피엔딩이라고 하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딸이 온전히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당시 어려운 형편으로 내 방을 가지지 못하고, 연년생 오빠에 대한 할머니의 편애가 지속되는 환경에서 딸이 삐뚤어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이다. 대구로 이사한 뒤 먹고살기 위해 옷장사를 한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장사를 한답시고 아이들과의 소통이 소원해진 엄마를 두고 비난할 수 없었다.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일련의 사건 이후, '복수의 일념'으로 한 공부와 할머니로부터 독립을 하고싶은 의지가 더해지면서, 딸은 1차로 대학에 합격을 하고 서울로 가게 된다. 딸은 복수에 성공했고, 원하는 서울로 갔고, 원했던 대학을 들어가니 아무런 생각이 안난다고 했고, 복수를 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힘든 형편과 환경, 큰 상처 이후의 결과는 원하던 대학의 합격, 두 딸과 함께하는 미국에서의 삶이다. 명품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는 딸의 삶을 보면서, 불행했던 과거와 현재의 삶의 차이를 보면서 인간승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삶을 가능하게 만든 동력]이 복수에 대한 집착(공부), 상처를 주는 대상(할머니)로 부터의 독립이라는 것에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낸 강인한 딸의 모습은 엄마를 꼭 닮은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성공은 물론, 내면의 평안까지 누릴 수 있는 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https://alook.so/posts/jdt5jRo
[합평]
철여님 말고 따님의 결핍에 대한 글을 쓰셨더라고요. 읽어 내려가면서 따님이 겪어온 부당한 차별에 마치 제가 겪은 듯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로 차별을 겪으면 그만큼 속상하고 억울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할머니도 할머니지만, 학교에서 사이코 선생님 때문에 겪은 수모는 정말 지금 시대라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라 더 속상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따님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기질이 무척 강하신 것 같아요. 이겨내는 법을 아는 사람 같다고나 할까요. 좌절하는 데서, 억울해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엇이 진짜 복수인지, 무엇이 진짜 나은 길인지 확실히 알고 가는 분 같아요. 또 철여님이 사연과 이후 엮인 이야기들을 적절하게 버무려주셔서 더 잘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독자로서 쾌감과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아쉬운 점이라면, 마지막에 결론을 내시면서 할머니와 할미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규정하셨는데, 이 부분이 선뜻 이해 가지 않았어요. 손자를 향한 마음만을 일컫는다면 맞는 말이겠지만, 그렇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마음만으로 이렇게 결론을 유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원인이 사랑이라 해서 부당한 행동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건 아니기에, 독자들이 납득할 만한 결말로 가려면, '지나친' 사랑이라는 수식어를 이용 한다든가, 아니면 할머니와 할미를 구분해서 결론을 내는 방향으로 가시는 게 더 매끈할 것 같습니다.
늘 솔직하면서도 거침없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 글도 감사합니다!
@강부원 소소한 삶에서도 본질을 늘 잃지않으신다는 증거...늘 감사합니다~~^&^
@life41 님도 늘 행보한 일만 가득하시길요...공감해주셔서 고마워요~~~^&^
@그섬에가고싶다 잘 키운 딸하나 열아들 안 부럽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던 시기도 있었죠...
글 읽어주시고 함께 생각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는 어엿하게 자식노릇하는 딸들이 대견하기만한 저로써는
차별이라니 정말 생각하기도 힘드네요
철여님에 좋은 글 읽으며 잠시 지난날을 생각해보네욧~^^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늘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할미와 할머니가 최고죠. 저는 외국 손님 오셔서 로컬 한국식당 추천해달라고 하면 무조건 '할미', '할매', '할머니' 붙어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합니다. '청년', '청춘' 이런건 가급적 피하라고 합니다. ㅎㅎ
[합평]
철여님 말고 따님의 결핍에 대한 글을 쓰셨더라고요. 읽어 내려가면서 따님이 겪어온 부당한 차별에 마치 제가 겪은 듯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로 차별을 겪으면 그만큼 속상하고 억울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할머니도 할머니지만, 학교에서 사이코 선생님 때문에 겪은 수모는 정말 지금 시대라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라 더 속상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따님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기질이 무척 강하신 것 같아요. 이겨내는 법을 아는 사람 같다고나 할까요. 좌절하는 데서, 억울해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엇이 진짜 복수인지, 무엇이 진짜 나은 길인지 확실히 알고 가는 분 같아요. 또 철여님이 사연과 이후 엮인 이야기들을 적절하게 버무려주셔서 더 잘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독자로서 쾌감과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아쉬운 점이라면, 마지막에 결론을 내시면서 할머니와 할미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규정하셨는데, 이 부분이 선뜻 이해 가지 않았어요. 손자를 향한 마음만을 일컫는다면 맞는 말이겠지만, 그렇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마음만으로 이렇게 결론을 유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원인이 사랑이라 해서 부당한 행동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건 아니기에, 독자들이 납득할 만한 결말로 가려면, '지나친' 사랑이라는 수식어를 이용 한다든가, 아니면 할머니와 할미를 구분해서 결론을 내는 방향으로 가시는 게 더 매끈할 것 같습니다.
늘 솔직하면서도 거침없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이번 글도 감사합니다!
손자를 돌보며 철여님 자녀들의 어린시절, 혹은 철여님이 자녀를 키웠던 그 시절이 더 자주 많이 떠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결핍'이라는 글감을 두고 따님의 어린 시절이 크게 다가왔을 것 같고요.
결핍이 곧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 따님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그만큼 결핍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그러모았을 것 같고요.
그런 따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모든 것을 다 도와줄 수는 없는 엄마의 마음이 엿보이는 글이라 생각해요.
'할머니와 할미의 본질은 사랑이었다'는 부분에서 할머니와 할미를 조금 더 드러내주면 어떨까 생각해요. 따님에게 할머니가 있었고, 민준이에게 할미가 있어요. 할미와 할머니를 같은 위치에 두고 둘의 공통점 또는 차이점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면 이 둘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결론이 조금 더 쉽게 다가올 것 같아요.
따님도 글을 쓰시다니요! 글쓰는 모녀 멋집니다!!
@나철여
[합평]
'할머니'를 타이틀로 하지만, 딸이 주인공인 글이다. 행복하지 못했던 성장과정을 통해 딸에게 어떤 결핍이 있었는지,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를 친할머니, 장사를 했던 시절, 머리를 깎고 복수를 향한 일념으로 공부에 올인하는 딸의 모습을 통해 드러낸다.
글을 읽으며 들었던 느낌은 '딸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할머니의 본질은 사랑이었고, 딸의 결핍은 해피엔딩이라고 하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딸이 온전히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당시 어려운 형편으로 내 방을 가지지 못하고, 연년생 오빠에 대한 할머니의 편애가 지속되는 환경에서 딸이 삐뚤어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이다. 대구로 이사한 뒤 먹고살기 위해 옷장사를 한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장사를 한답시고 아이들과의 소통이 소원해진 엄마를 두고 비난할 수 없었다.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일련의 사건 이후, '복수의 일념'으로 한 공부와 할머니로부터 독립을 하고싶은 의지가 더해지면서, 딸은 1차로 대학에 합격을 하고 서울로 가게 된다. 딸은 복수에 성공했고, 원하는 서울로 갔고, 원했던 대학을 들어가니 아무런 생각이 안난다고 했고, 복수를 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힘든 형편과 환경, 큰 상처 이후의 결과는 원하던 대학의 합격, 두 딸과 함께하는 미국에서의 삶이다. 명품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는 딸의 삶을 보면서, 불행했던 과거와 현재의 삶의 차이를 보면서 인간승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삶을 가능하게 만든 동력]이 복수에 대한 집착(공부), 상처를 주는 대상(할머니)로 부터의 독립이라는 것에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낸 강인한 딸의 모습은 엄마를 꼭 닮은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성공은 물론, 내면의 평안까지 누릴 수 있는 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https://alook.so/posts/jdt5jRo
[합평]
결핍의 극복이라는 서사는 진부한 소재이면서도 늘 새롭고 인상적이다. 결핍은 인지하고 방향을 틀던, 극복하여 뛰어넘던, 새로운 페이즈로(phase)의 돌입을 이끌어 낸다. 삶에서 인지되는 몇 안되는 삶의 계단에는 늘 결핍이 함께한다. 극복할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결핍은 우리에게 늘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나아감을 느낀다. 진부한 소재임에도 늘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는 이유다.
글쓴이의 딸은 결핍에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할머니의 편애로부터, 정신나간 선생의 체벌로부터 다시 본인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심지어는 극복해 나간다. 그것도 결핍보다 더 큰 주변의 사랑을 흡수하면서.
또한, 이 서사는 본인이 직접 말하는 서사가 아닌, 어머니의 입장에서 풀어낸 서사라는 점이 눈에 띈다. 딸의 결핍은 오롯이 그녀만의 결핍이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마찬가지로 결핍이었음을 글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결핍은 본인 스스로 뿐만 아니라 관계를 통해 관찰되고 극복되고 서술될 수 있는 하나의 생명력을 지닌 서사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할머니의 본질이 사랑이었다'는 마지막 말에는 조금 더 재료가 필요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글의 내용상 할머니의 편애는 서사의 주인공인 딸이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추측해보면, 지금 할미로서 느끼는 글쓴이의 감정이 딸의 '할머니'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뉘앙스인 것 같은데, 아쉽게도 이 글에서는 그 부분이 잘 조명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딸의 결핍이 해피엔딩'이었다는 결말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섣부르다는 인상이 들기도..
[합평]
청출어람, 점입가경.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사자성어입니다. 아직 할머니가 되어보지 않아서 '할머니와 할미'의 사랑은 어떤 느낌일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시엄니와 친정엄마가 보여주고 실천한 그 사랑을 짐작할 뿐입니다.
'얼에모2'의 주제 내용에서 자신이 아닌 딸의 결핍을 바라보는 엄마의 글이어서 조금 예외적이었어요. 그 예외가 철여님의 자유자재, 다재다능으로 확산되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재밌게, 뜻밖에, 혹은 신선하게. ;)
그래서 뜻밖에 학교폭력 내용의 글을 읽고 잠시 말문이 막히기도 했어요. 더구나 그게 학생과 학생이 아닌 교사와 학생이라니, 이게 정말 실화인가 싶기도 했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40대 어느 시절에 시민단체인 *교육학부모회에서 제가 몇 달 일할 때 무수히 접수되는 학교폭력 사례에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들이 비일비재했다는 걸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딸 옆의 할머니와 손자 옆의 할미는 세대를 넘어 이렇게 달라졌다는 게 실감납니다. 빠른 속도감으로 읽히게 하는 아찔한 내용, 담담한 표현은 그래서 독자의 감정을 오르내리게 합니다. 따님의 복수는 너무나 지혜로운 자기만의 방법으로 아주 통쾌하게 무찔렀습니다. 사업으로 정신없이 바쁜 엄마의 '본질'을 이미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멋진 복수로 여러사람에게 해피엔딩을 느끼게 하는 군요.
철여님의 힘센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합평]
손자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고모인 '딸'의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글을 읽어나가며 제목과 내용간의 관계를 찾아나가려 했습니다. 딸의 이야기는 할머니로부터 초래된, 그리고 바쁜 부모님으로부터 시작된 하나의 애정결핍. 그렇다면 할머니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글 전반에서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게 되었습니다.
글에서는 '나'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조금은 절제된 감정들을 통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엄마로서 딸을 바라보는 그 이야기에서 절제된 감정은 보다 글이 깔끔하게 느껴지는 효과로 이어집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 따님의 모습에서는 감탄을 자아내게 되었습니다. 아마 본래 올곧은 분이었기에, 그래서 힘든 상황에서도 올곧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었겠지요.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 이번에는 시간 부족으로 평소와는 달리 댓글로 합평을 하게 되었습니다ㅠㅠ
@강부원 소소한 삶에서도 본질을 늘 잃지않으신다는 증거...늘 감사합니다~~^&^
@life41 님도 늘 행보한 일만 가득하시길요...공감해주셔서 고마워요~~~^&^
@그섬에가고싶다 잘 키운 딸하나 열아들 안 부럽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던 시기도 있었죠...
글 읽어주시고 함께 생각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는 어엿하게 자식노릇하는 딸들이 대견하기만한 저로써는
차별이라니 정말 생각하기도 힘드네요
철여님에 좋은 글 읽으며 잠시 지난날을 생각해보네욧~^^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늘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할미와 할머니가 최고죠. 저는 외국 손님 오셔서 로컬 한국식당 추천해달라고 하면 무조건 '할미', '할매', '할머니' 붙어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합니다. '청년', '청춘' 이런건 가급적 피하라고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