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feat.문해력)
2022/08/23
'심심한 사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사태의 시작은, 한 업체에서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는 글을 올렸는데, 이에 네티즌들이 '뭐가 심심하냐'라고 반발하면서 일어났다. 당연히 심심한 사과의 뜻은 지루한 사과는 아니고, 마음 깊이 사과한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대통령까지 '문해력'을 거론하고 나섰다는데, 개인적으로 이 사태의 핵심은 '어휘력' 보다는 '비난' 자체라고 느낀다.
기존에도 계속 일련의 '한자어'를 놓고, 이를 모르는 세대를 탓하는 일들은 있어왔다. 그러나 나는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한자어를 모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나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인 책들을 읽다보면, 모르는 한자어들 투성이다. 언어란 시대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 반대로 보면, 기성 세대는 새로운 세대들이 쓰는 신조어나 외래어는 거의 모르기도 한다. 문제는, 특정 어휘를 알고 모르고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소통에 대한 태도 자체의 변질이다.
업체가 사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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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등의 책을 썼습니다.
현재는 변호사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제 주위에 말을 왜곡하고 전달하려는 주제가 아닌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아서 저는 안 좋은 언어습관이 생겼습니다. 잘 전달하기 위해 설명하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설명이 습관이 되었다고 친구들한테 지적 받죠. 하~정말 답답한 사람들 여럿 떠오르게 하네요.
글에 감명 받았다는 소리입니다. 써놓고보니 부정적으로 이죽거리는 것 같네요.
결국 '심심한 사과' 는 오해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말았네요.
소통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를 조금 더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볼 때,
사과의 표면의 빨간색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글의 맥락을 통해 하얀 속살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디 오해를 넘어 이해로 가는 넉넉함이 존재하는 사회가 되길!
모르는 말이 있으면 찾아보고 끄덕이면 되는데, '왜 내가 모르는 말 써? 내가 모르는 말을 쓰는 네가 나빠' 식의 반응이 많아진 것 같아서 당황스럽다는 생각만 해봤고, '신뢰가 사라졌다'는 측면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읽으며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신뢰가 메말라가는 사회라니 아득해집니다.
결국 '심심한 사과' 는 오해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말았네요.
소통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를 조금 더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볼 때,
사과의 표면의 빨간색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글의 맥락을 통해 하얀 속살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디 오해를 넘어 이해로 가는 넉넉함이 존재하는 사회가 되길!
모르는 말이 있으면 찾아보고 끄덕이면 되는데, '왜 내가 모르는 말 써? 내가 모르는 말을 쓰는 네가 나빠' 식의 반응이 많아진 것 같아서 당황스럽다는 생각만 해봤고, '신뢰가 사라졌다'는 측면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읽으며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신뢰가 메말라가는 사회라니 아득해집니다.
제 주위에 말을 왜곡하고 전달하려는 주제가 아닌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아서 저는 안 좋은 언어습관이 생겼습니다. 잘 전달하기 위해 설명하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설명이 습관이 되었다고 친구들한테 지적 받죠. 하~정말 답답한 사람들 여럿 떠오르게 하네요.
글에 감명 받았다는 소리입니다. 써놓고보니 부정적으로 이죽거리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