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남들이 더 잘 안다 - 이병률 詩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유용선 (兪勇善)
유용선 (兪勇善) · 일상의 구슬을 꿰어 인생을 이어나감.
2024/05/28
정답은 남들이 더 잘 안다

- 이병률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늦은 밤 술집에서 나오는데 주인 할머니 
꽃다발을 놓고 간다며 
마늘 찧던 손으로 
꽃다발을 끌어안고 나오신다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이 꽃다발은 할머니한테 어울리네요 
가지세요 

할머니는 한사코 가져가라고 나를 부르고 
나는 애써 돌아보지 않는데 

또 오기나 하라는 말에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꽃 향은 두고
술 향은 데리고 간다 

좁은 골목은 
식물의 줄기 속 같아서 
골목 끝에 할머니를 서 있게 한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에 가라는 할머니의 말

신(神)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은
술을 몇 잔 부어주고서야 
이토록 환하고 착하게 온다 

* * * 

언어가 깔끔하게 절약된 시는 빈자리를 채워가며 읽는 재미가 있어 좋다. 생활 속 한 장면을 잘라내듯 그려내어 거기로부터 시정을 이끌어내는 형식은 아마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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