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베다니로 가는 길(10): 꿈을 접은 식민지의 청년들]

안순우
안순우 · 시와 소설을 사랑합니다.
2024/05/07


<1>
11월, 늦가을 들판은 벌써 춥고 황량하다. 가을 보리를 파종하려는 집에서는 벼를 추수한 논을 다시 쟁기로 기경하고 있다. 소나무를 깍아서 만든 멍에를 맨 암소는 땅 속에 깊이 박힌 쟁기를 끄느라고 목을 길게 빼고서 입에는 하얀 김을 토해내고 있다. 암소는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쟁기를 끌고가던 발걸음을 멈추고서 벼를 벤 자리에서 다시 움돋은 새싹을 뜯어먹고 있다. 그 때마다 농부는 고삐를  잡아당기면서 암소에게 ‘어서 가자’고 채근한다. 들판 군데군데에는 가을 타작을 마치고 쓸모없는 지푸라기와 죽쟁이를 태우느라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짚불의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가 구름처럼 옆으로 길게 퍼지고 있다. 그 때 강 건너 예배당에서 종소리가 “땡그랑! 땡그랑!” 은은하게 들려왔다.

해질 무렵 배다리 동네로 검은 승용차 한대가 신작로에 흙먼지를 휘날리면서 들어간다. 멀리 길 한가운데로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자 “빵빵”하고 경적을 울렸다. 아이들은 길가로 잠시 비켜섰다가 다시 먼지 날리는 자동차 뒤꽁무니를 따라서 뛰어간다. 자동차가 저만치 달려가다가 멈춰섰다. 그리고는 창문이 미끄러지듯이 스르르 열렸다. 기름을 발라서 뒤로 넘긴 반백의 머리에 콧수염을 잘 기른 초로(初老)의 신사가 아이들을 향해서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애들아! 하나만 물어보자!
이 동네가 배다리 마을이 맞지? 
이 마을에 혹시 김치성이라는 어른이 계시나?“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서로 뭔가를 말을 주고받는다.
“혹시 그 할부지 교회 장로님이지예?
손자도 있지예?......김명호라꼬예?”
“그래! 교회 장로님일테지? 
손주도 아마 너희 또래는 될텐데...
내가 예전에 한번 왔었는데! 
여러 해가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구나!
아직도 이 동네에 살고 계시지?”

“네! 동네 팽나무 아래 우물터를 지나서 ....
동네 제일 꼭대기 집에 살고 있습니더...
그 집에 무서운 똥개가 있습니더! 조심하이소! 하하하!”
“그래! 고맙다!”
자동차는 유리문이 올라가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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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멸성과 불가해성을 고민합니다. 가장 존귀하지만 또 가장 부패한 인간 연구에 천착하여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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