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개가 넘는 언어가 사용되는 인도에서는 완벽한 언어 구사에 집착하지 않는다

r
redist96 · 호기심 많은 기후생태활동가이자 한의사
2023/02/04
한반도를 벗어나서 살아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가족의 스위스 발령으로 2019년부터 프랑스어권인 제네바 지역에서 살게 되었다. 직장과 집, 주변 일을 정리하기에도 빠듯하여 가기 전에 언어를 미리 공부할 여유는 갖지 못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반,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체념 반, 그리고 약간의 설렘을 갖고 떠났다.
   
나에게 외국어란 애증의 대상이었다. 늘 배우고 싶지만 일부러 시간 내어 하기도 어렵고 막상 배운다 해도 24시간 한국어만 쓰는 나로서는 써먹을 기회도 없다. 가끔 만나는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답답할 때마다, ‘이젠 정말 영어를 맘먹고 공부해야지’하는 결심을 하지만, 또 자주 만나는 것이 아닌지라 곧 스멀스멀 결심이 해이해졌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의 외국어 사랑은 늘 짝사랑이었다. 우리는 항상 영어, 일어, 중국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등 강대국의 언어들을 배우려고 해왔지만, 영국,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지는 않으니까. (하긴 우리도 할 말 없다. 우리도 제주어를 포함한 한국어 방언, 타갈로그어, 마오리어, 벵갈어, 링갈라어를 배우려 하지는 않는다. 문화적 관심은 늘 일방적으로 제국의 메트로폴리스를 향해 있다.)

스위스는 공용어가 네 개다.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쉬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할 수 있고 거기에 영어도 웬만큼 잘 했다. 모든 국민들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배우게 하기 위해서 중고등학생들을 다른 지역으로 어학연수를 보내는 게 국가정책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경상도와 전라도가 서로의 방언을 배우게 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2주간 서로의 지역으로 홈스테이를 보내는 셈이랄까? 게다가 많은 가족들이 국제결혼을 했거나 해외 체류 경험이 있고 가족 안에서 구사하는 언어도 여러 개였다. 우리 집처럼 <대대손손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만 살아왔고 일가친척이 모두 한국 사람인> 사람 둘이 결혼해서 한국어로만 대화하는 집은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생태주의, 여성주의, 언어학, SF, 한의학, 장애학, 모유수유
29
팔로워 14
팔로잉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