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1
김도훈님의 훌륭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제 마음 속 마지막 아이돌은 2NE1인 바, 그들의 ‘해체’이래로는 최근 케이팝 아이돌씬에 대해서는 거의 하나도 모르는 수준이었는데, 뉴진스라는 뉴타입이 이렇게나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니 반갑고 놀라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어찌보면, 무려 ‘그’ 투애니원조차 뉴진스가 가려는 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어서 안타깝달까요, 씁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분들 중에은 악플에 대한 뉴진스의 저항이랄까, 응징에 대한 말씀을 남기기도 하셨습니다. 예컨대 블레이드님이 작성하신 아래와 같은 글이 그렇습니다..
이 글을 읽은 분들 중에은 악플에 대한 뉴진스의 저항이랄까, 응징에 대한 말씀을 남기기도 하셨습니다. 예컨대 블레이드님이 작성하신 아래와 같은 글이 그렇습니다..
저는 악플러는 정신병자라고 생각을 해요. 악플러가 정신질환자가 아니면 그냥 사람인건가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악플러는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 자체를 괴롭히고 죽일려고 환장하는 괴물이에요. 악플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했어요. 악플 때문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뜨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원글)
과연, 악플이라는 증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악’이라는 한 글자에 이미 모든 평가가 끝난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악‘자 한 글자는 뿌리를 뽑기가 어려워서, 악플때문에 죽는 이들은 거의 매년 생기다시피 하지만 그들을 ‘살인죄’로 기소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 대신, 악플러들이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뭐가 잘못됐냐‘는 말을 무려 방송에 나와서 하는 지경입니다. 예컨대 아래와 같이 말이죠.
이런 파렴치함 때문일까요. 악플 현상은 꽤나 오래된 연구주제였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개는 심리학과 (의외로?) 법학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데요, 전자의 경우는 ‘악플을 작성하는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 많이 다루고 있는 한편, 후자는 처벌근거 또는 대응방안에 대한 연구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두 개의 학제에서 악플을 다루고 있을 때에는, 블레이드님 외에도 많은 분들이 ...
전 악플이 정신병자들의 일탈 행위(혹은 그들 입장에서는 정상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악플이 만들 수 있는 최악의 사태를 예상하지 못하고 저지르는 순진무구한 행태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아마 악플러의 대다수가 평범한 사람들이겠죠. 한나 아렌트는 잘 모르지만 '악의 평범성'이라는 제목 하나는 정말 길이길이 남을 끝장나는 작명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요즘들어 자주 합니다... MZ세대라는 쉬운 단어로(전 이 단어야 말로 무식하고 배려없는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 모든 젊음을 퉁칠 수 없는 것처럼 악플의 이유도 경향성은 살펴볼 수 있겠지만 악플 참여자들의 심연은 살펴보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이유들이 섞여있을 테니 이유는 현상 분석을 위한 자료로는 사용될 수 있겠지만 악플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면죄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악플을 정당한 것으로 믿게 만드는 사회적 믿음'이라는 문장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요. 사회는 법으로 구성원의 행동을 규제하기도 하지만 인간들이 스스로 만든 도덕적 잣대에 의해 조절이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댓글의 수준에 대한 윤리적 비난이 없거나 약할 때 '괜찮구나'라는 신호를 주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토대가 잘 다져진 믿음의 토대에는 토대가 없는 믿음이 놓여 있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토대라는 것,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저는) 믿어요. 통제를 통한 조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며 불안이나 분노를 해소하는 방식과 타인에 대한 질투보다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포용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드러나 있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믿음 회복의 신호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악플로 악한 목소리가 과대대표되고 있는 것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악하지 않은 목소리로 중화시키는 방법이 필요할 것 같네요.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악플의 평범성이 탄생할지도...
슬픕니다.
https://alook.so/posts/KmtB90b
'어제 김도훈 님의 글을 읽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이 글에 이렇게 크게 동요하는가. 김도훈 님이 글에서 꺼낸 것은 아이돌 뮤비가 아니었습니다.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세상에서 무책임한 말과 행동이 몰아간 사회적 타살에 암묵적으로 공모한 죄책감이었습니다. 악플을 쓰지는 않았더라도 외면했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의사는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나이가 어린 아이돌을 볼 때면 욕심 많은 부모에게 휘둘린 불쌍한 아이들 취급했던 과거의 내 모습, 악플은 나쁘다고 분노하면서 단 한 번도 악플을 신고하지 않았던 나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글이었습니다.
악플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악플을 방조했던 저 같은 사람들은 후회했을 것이고 악플을 적극적으로 신고했던 사람들은 슬픔을 느꼈겠죠. 설리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김도훈 님의 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전 악플이 정신병자들의 일탈 행위(혹은 그들 입장에서는 정상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악플이 만들 수 있는 최악의 사태를 예상하지 못하고 저지르는 순진무구한 행태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아마 악플러의 대다수가 평범한 사람들이겠죠. 한나 아렌트는 잘 모르지만 '악의 평범성'이라는 제목 하나는 정말 길이길이 남을 끝장나는 작명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요즘들어 자주 합니다... MZ세대라는 쉬운 단어로(전 이 단어야 말로 무식하고 배려없는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 모든 젊음을 퉁칠 수 없는 것처럼 악플의 이유도 경향성은 살펴볼 수 있겠지만 악플 참여자들의 심연은 살펴보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이유들이 섞여있을 테니 이유는 현상 분석을 위한 자료로는 사용될 수 있겠지만 악플 자체의 정당성에 대한 면죄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악플을 정당한 것으로 믿게 만드는 사회적 믿음'이라는 문장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요. 사회는 법으로 구성원의 행동을 규제하기도 하지만 인간들이 스스로 만든 도덕적 잣대에 의해 조절이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댓글의 수준에 대한 윤리적 비난이 없거나 약할 때 '괜찮구나'라는 신호를 주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토대가 잘 다져진 믿음의 토대에는 토대가 없는 믿음이 놓여 있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토대라는 것,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저는) 믿어요. 통제를 통한 조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며 불안이나 분노를 해소하는 방식과 타인에 대한 질투보다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포용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드러나 있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믿음 회복의 신호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악플로 악한 목소리가 과대대표되고 있는 것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악하지 않은 목소리로 중화시키는 방법이 필요할 것 같네요.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악플의 평범성이 탄생할지도...
슬픕니다.
https://alook.so/posts/KmtB90b
'어제 김도훈 님의 글을 읽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이 글에 이렇게 크게 동요하는가. 김도훈 님이 글에서 꺼낸 것은 아이돌 뮤비가 아니었습니다.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세상에서 무책임한 말과 행동이 몰아간 사회적 타살에 암묵적으로 공모한 죄책감이었습니다. 악플을 쓰지는 않았더라도 외면했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의사는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나이가 어린 아이돌을 볼 때면 욕심 많은 부모에게 휘둘린 불쌍한 아이들 취급했던 과거의 내 모습, 악플은 나쁘다고 분노하면서 단 한 번도 악플을 신고하지 않았던 나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글이었습니다.
악플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악플을 방조했던 저 같은 사람들은 후회했을 것이고 악플을 적극적으로 신고했던 사람들은 슬픔을 느꼈겠죠. 설리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김도훈 님의 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