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만 하면 뭐 하나

배윤성
배윤성 · 에세이집 '결론들은 왜 이럴까'를 냄
2023/11/12
아그노톨로지(agnotology)는 저급한 정보는 넘치는데 진실을 알려주는 정보가 없는 상황을 말한다. 단편적인 정보들에 잠식당해 잘못된 의견을 갖게 되거나 얕은 사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편향된 정보의 독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진짜’를 알기 위해 다양한 활자물을 찾아 다닌다. 삶 너머의 진짜 삶을 알게 해 줄 책들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치기도 한다. 

독서일기를 여러 권 내며 책 읽기의 정수를 보여준 장정일은 그의 책에서 ‘책을 읽는 행위가 개인의 내밀한 쾌락을 추구하는 것과 아울러, 민주사회를 억견과 독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라고 했다. 독서의 사회적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작가 자신은 한시도 활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 ‘사람이 무엇을 감상하려면 멈춰야 하는 것처럼 무엇을 생각하고자 한다면 잠시 활자로부터 눈을 떼야 한다’고도 했다. 무조건 읽기만 하는 게 답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나는 좀 다른 의미로 책을 읽는 게 편하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군가는 ‘책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은 역사 최대의 거짓말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책이 뭔가를 줄 거라 기대했는데 아무것도 얻은 게 없어 심통이 난 듯하다. 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성찰, 깨달음이라도 얻으면 다행인데 나는 과연 책에서 무엇을 얻고 있는가. 앞에서 열거한 책의 유용함은 실체가 있는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게 달리 없으니 책이라도 읽는다고 자위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유들은 아닌가. 

책 한 줄 읽지 않고도 타고난 감각으로 자신의 삶을 잘 경영하는 사람들은 책 말고도 인생을 가르쳐 줄 스승이 많다고 말한다. 삶이라는 현장에서 부딪치고 깨지며 배운 세상이 진짜라고 하기도 한다. 그들이 더 현실의 토대에 굳건히 뿌리 박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에 비해 머리만 비대해진 책상 물림들은 현실성 없는 공허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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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문학을 전투적으로 공부하며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매일 읽고 생각하고 쓰는 생활을 하다보니 내가 축적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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