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멘타 하인학교> : 소년이여, 야망을 버려라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10/16

● 작은 것들의 대리인

특이하고도 비범하며 기구한 운명을 가진 작가가 있다. 가난한 형편 탓에 최종 학력은 중학교 중퇴에 불과하고, 평생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지 않은 채 유랑민처럼 떠돌아다니며 고독을 벗 삼아 하루를 살아낸 사람. 종국에는 제 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절필을 선언한 사람. 무려 2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걷고 또 걷다가 크리스마스에 떠난 산책길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 그가 바로 문학사에 불가해한 신화를 남긴 '로베르트 발저'이다.

평생 동안 누구와도 깊은 인연을 맺지 않고 기꺼이 아웃사이더가 되길 자처한 그의 삶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잠들어 있다. 이 고독한 괴짜가 단절을 택한 사유가 타고난 반골기질 때문인지, 외부적인 영향에 의한 것인지 알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에게 부여된 천재성이 축복과 형벌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했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치열하게 '쓰는 인간'이기 전에 '걷는 인간'이었다. 그에게 걷기란 세상과 소통하고 영감을 얻는 창구이자 명상 시간이며, 간절한 기도였다. 그는 오직 걷는 행위를 통해 어떤 곳에도 머무르지 않으면서 모든 곳에 존재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오랜시간 고행자의 자세로 얻은 깨달음은 곧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재료가 되었다.

로베르트 발저의 대표작 「벤야멘타 하인학교 : 야콥 폰 군텐 이야기」는 부제(실제로는 원제)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주인공이 기록한 일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정확한 날짜 기입 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서술된 이야기들은 시종 불친절하게 진행된다. 마치 구름 위를 거닐 듯 꿈과 현실이 뒤엉켜 있고, 섬세한 문장들은 상징과 은유로 넘실거린다.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아닌 곳으로 향한 그의 발걸음은 위대한 글이 되어 도발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 무엇도 되길 원치 않았으나 버려진 것들의 담지자로 자리매김한 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불온한 복종, 고요한 저항

권력자가 되길 원하는가? 빈털털이가 되길 원하는가?, 어떤 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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