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선이 이모

윤린
윤린 · 방송작가
2023/10/15
설명을 하지 않아도 내게 자신을 이해시킬 수 있었던 그녀.

계선이 이모. 그녀와 나의 그 하루가 사무치게 다가오는 때가 있고 그리고 많이 뒤척인다. 

나는 가수 이선희씨가 노래를 얼마만큼이나 잘 하는 가수인지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가수가 어떤 목소리가 노래를 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모든 유행가가 그렇 듯 과거 어떤 날의 이미지 그러니까 추억을 동반하는 노래와 가수만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선희씨의 노래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시간의 닻을 거슬러 소녀 시절 어느 해 초 여름날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무서운 적막과 침묵이 흐르던 서늘한 방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기억은 순전히 내게 달렸다. 내게 속했던 나와 그녀만의 시간으로.

엄마에게는 여자 형제가 없는데 내게는 이모가 있었다. 어떤 경로를 통해 만났고 어떤 관계가 있어 의자매를 맺고 피붙이보다 더 살뜰하게 한때를 더불어 지냈는지는 모른다.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 있는데 묻지 않는다. 

계선이 이모. 내게 그럴 수 없이 다정했던 이모가 초등학교 첫소풍 기념으로 사준 원피스. 그 옷을 입고 찍은 사진에 날짜가 표기 되어 있다. 미루어 짐작컨테 이모는 내가 아주 어린 날부터 엄마와 절친했던 사이인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계선이 이모는 우리집에 와 있었다. 이모는 내 방에서 나랑 함께 지냈다. 그녀는 예뻤고 말 수가 적었고 당시 유행하던 긴 파마머리가 풍성했는데 여리여리한 콧날이 섬세하고 귀족적이었다. 엄마 또래임에도 시집을 가지 않았고 대체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행동도 느리고 말도 느리고 먹는 속도도 모든 게 느린 사람이었다. 심지어 생각도 느릿느릿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 이모가 나랑 둘이만 있으면 이야기를 참 재미나게 잘했다. 책 이야기, 조선 왕들의 이야기, 바다 이야기, 인디언 이야기, 아프리카 이야기, 영화 이야기... 제임스 딘이라는 미국 배우가 있는데 그 배우는 우수 어린 (우수란 단어가 얼마나 매력 있...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빨갛게 물든 열매 너댓 개 붙은 망개 가지를 구멍난 백립 갓전에 꽂고 길을 가던 환이. 얼음 밑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서러운 길을 가던 환이와 같은 사람들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13
팔로워 7
팔로잉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