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서 딸에게로 혹은 여자에게서 여자에게로 이어지는... 단시엘 W. 모니즈, 《우유, 피, 열》

백혁현 · 오래된 활자 중독자...
2024/06/07
“어디에나 여자들이 있었다. 할머니의 친구들이며 옆 동네에서 온 낯선 여자들은 물론 더 멀리서 온 여자들도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여자들도 있었고, 서류 정리를 하는 여자들도 있었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사업하는 여자들도 있었고 매춘하는 여자들도 있었으며, 결혼을 했던 여자들도, 한 번도 결혼한 적 없는 여자들도 있었다. 꽃을 단 여자들도, 풀잎 치마를 입은 여자들도, 머리를 땋은 여자들도, 구슬을 단 여자들도, 벌거벗은 여자들도 있었다. 늙은 여자들, 어린 여자들, 키 큰 여자들, 부둥켜안고 노래하고 달리고 기도하는 여자들과 밤새 술을 마시는 여자들.” (pp.323~324, 〈뼈들의 연감〉 중)
 「우유, 피, 열」
 “엄마는 수건을 한 장 집어 들고 에바를 일으켜 세워 물기를 닦아주고는 생리대 사용법을 알려준 뒤 거실로 데리고 나간다. 딸을 다리 사이에 앉히고 엉킨 머리를 빗겨주고 두피에 오일을 발라 확신에 찬 손가락으로 마사지를 해준다. 머리를 땋아 왕관처럼 둘러주는 동안 에바가 실컷 울도록 내내 말없이 내버려둔다. 에바는 이 새로운 감정, 감각이 갈라져 열리는 느낌이 놀랍다. 자그마하면서도 대단한 일이 내면에서 일어나며 공간을 만드는 중인 것 같다.” (p.37) 책에 실린 거의 모든 단편의 주요 인물들은 여성이고, 그들에게 벌어지는 일 혹은 그들이 벌이는 일들은 끈적하게 현실적이다. 어린 소녀 에바와 그 친구인 키라 또한 그 여성들 중 한 명이다. 소설을 읽다가 아내와 함께 놀러 간 스카이베이 호텔의 방이 생각났다. 가장자리 방이었고 발코니가 길었는데, 나는 아내가 그곳에 발을 디딜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시 아내가 그곳에서 발코니 바깥으로 휙 몸을 던질지도 모른다는 상상 때문이었는데, 소설의 어느 순간 그때처럼 숨이 턱 막혀버렸다.
 「향연」
 거의 다 자란 아이를 사산하여야 했던 내가 겪는 극심한 불안증이 중심에 있다. 그로 인하여 남편인 히스와 전처 소생의 딸 닐스가 겪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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