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4
1. 제사(祭祀)와 스포츠는 하나였다.
여행은 잘 걸을 수 있을 때 하는 게 좋다. 부모님의 말이었다. 물론 나는 아직 젊다. 하지만 스무 살 무렵 뚜벅이 여행을 다닌 시절에 비하여 몸이 분명 둔해져 있었다. 고대 그리스 민족의 영산(靈山) 파르나소스를 오르면서, 나의 운동 부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그리스 신혼여행을 통틀어 가장 많이 걸은 하루였다. 웬만해서 힘든 티를 내지 않는 아내조차 가끔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신혼여행은 게으른 여행이다. 정신없이 결혼식을 마치고 잠시 주어지는 짧은 휴식이다. 그렇기에 휴양지를 많이 택한다. 하지만 우리는 장기 여행이었고, 계획부터 유적지 답사가 꽤 끼어있는 편이었다. 문제는 델피 유적은 고대 그리스의 성지(聖地)라는 것이다. 본래 신이 사는 땅은 인간이 닿기 힘든 곳에 있는 법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열심히 산을 걸어 다녀야 했다.
파르나소스산은 우주의 중심이었다. 최고신 제우스가 동서 땅끝에서 동시에 독수리를 날려 보내어 중간에 만난 곳이다. 그곳에 제우스는 배꼽이란 뜻의 ‘옴팔로스(ὀμφᾰλός)’라는 둥그런 돌덩이를 놓아두었다.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했던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대신 먹인 돌덩이라고 한다. 지금도 델피 고고학 박물관에서 그 유적을 직접 볼 수 있다.
이곳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델포이 신전이 세워졌다. 아폴론이 신녀(神女)를 통해 미래를 예언한다는 그곳이다. 온갖 영웅들과 왕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이 전통은 자그마치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 이전까지 이어졌다.
유적지는 이미 전 세계에서 모인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했다. 그리스어보다는 오히려 독일어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이들에겐 경주 같은 느낌인지 수학여행을 온 고등학생들의 모습도 꽤 보였다. 이 학생들은 물론 고대 유적보다는 다른 나라 동갑내기들에게 더 관심 있어 보이기는 했다. 은퇴한 여행자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모두 옛 순례자들처럼 산을 올랐다.
유적지 가장 꼭대기에는 작은 스타디움이 있었다. 산 중턱에 자리하...
배웠던 공부들이 어느새 거짓말처럼 향 연기마냥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이가 들어도, 그 시절 고민했던 내가 남아있게 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