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웬만하면 누워 있는 와식생활자입니다

채헌
채헌 · 짓는 사람
2024/03/25
나는 정말이지 누워 있는 걸 좋아한다. 먹는 것도 노는 것도 좋아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누워 있는 거고 그보다 더 좋아하는 건 누워서 자는 거다. 팬더들처럼 인간도 누워서도 먹을 수 있었다면 그걸 가장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첫 소설책 『해녀들: seasters』 작가 소개에 ‘왜 나무늘보나 팬더로 태어나지 않았는지 의아한’이라고 썼는데 순도 100퍼센트의 진심이다. 전생에 죄를 지어 인간으로 태어난 것 같은데 그래서 다음 생에 나무늘보나 팬더로 태어나고 싶은가 하면, 아니. 나는 그냥 안 태어나고 싶다. 아무것으로도 존재하고 싶지 않다. 

나는 책도 누워서 읽기 때문에 책 읽으러 카페나 도서관에 가지 않는다. 무조건 집, 무조건 이불 속이다.
지금도 누워 있고 싶다. 하지만 한참 누워서 책 읽고 낮잠 한판 달게 자고 햄스트링 스트레칭까지 마친 참이다. 더 누워 있으라면 당연히 가능하고 더 누워 있고도 싶지만 내게도 일말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이 정도 먹고 이 정도 자고 쉬었으면 글을 좀 써야 하지 않겠나, 하는. 

이렇게 말하면 의무감으로 글을 쓰는가 싶겠지만 전혀. 글을 의무감으로 쓰지 않는다. 글이 아니라 무어라도 의무감으로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좋아야, 내가 좋으려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 글도 순전히 내가 좋아서 쓰고 있다. 누가 산문 같은 걸 쓰라 한 적 없고 내 글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편집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역시 나무늘보나 팬더로 태어났어야 했다.      

꼭 필요한 때가 아니라면 나는 누워 있다. 밥 먹을 때, 글 쓸 때, 운동할 때가 꼭 필요한 때에 해당한다. 안 그래도 좋지 않았던 위장이 더 약해지면서 밥 먹고 소화시킬 때가 추가되었다. 역류성 식도염, 위경련, 위염, 위궤양을 두루 겪고 난 후의 일이다.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나면 글을 쓴다. 부지런해서가 아니오, 쓰고 싶어 미칠 것 같아서도 아니다. 글을 사랑하고 내내 쓰고 싶은 것과 밥을 먹고 난 후 곧장 책상 앞에 앉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때의 글쓰기는 전적으로 소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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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습작기를 보내고 2023년 첫 장편소설 『해녀들: seasters』를 냈습니다. 작고 반짝이는 것을 오래 응시하고 그에 관해 느리게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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