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서 믿고, 믿어서 있는

오아영
오아영 인증된 계정 · 갤러리 대표, 전시기획자, 예술감상자
2023/01/11

장수지, 종이에 혼합재료,<품에>, 33.8x 42.9cm, 2022,//소녀가 엎드려있는, 식물이 그려진 바탕은 무엇일까. 바탕을 무어라 믿느냐에 따라 그녀의 존재상태는 완전히 달라진다. 바닥일까 벽지일까 꿈속의 배경일까. 정답은 엄마의 치마폭이다. 소녀는 엄마의 무릎에 엎드려 있다.


너무 자주 사람들이 당연한 걸 믿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며 웃는다. 인간은 그런 존재라고. 그러니까, 가령 인간여성과 인간남성의 섹스라는 행동은 새 인간을 만들어내는 작업이기도 하잖아. 이건 진리다. 무려 우리는 이걸 주변삶을 통해 계속 보고 듣고 의무교육과정을 통해서도 배웠지.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매혹적인 누군가와의 관능적인 잠자리를 꿈꿀적에 대체로 “저 사람과 아기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지 않지. 정보적으로 어 그건 맞는말이야, 하는거랑 믿는 건 좀 다르다. 이 정보를 진짜 사람들이 잘 믿는다면 피임하지 않고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맞는 일은 드물거다. 행동은 믿음의 증거다.



아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성욕과 매혹의 감각은 지금당장 여기 내 몸에 일어나는 실제고 아기가 만들어지는 일은 당장 감각적으로 내 실존이 만지고 느낄 수 있는게 아니니까. 이런식으로 많은 인간이 좀처럼 잘 못 믿는 거 하나는 미래의 나자신과 현재의 나자신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다. 현재의 나 자신이 미래의 나자신이 될 거라는 사실이 정보차원에서가 아니고 실제로 몸으로 와닿는다면 모든사람들은 저축(내지 재테크등등)을 열심히 할 테니까. 죽음도 그렇고. 아, 내얘기기도 하다. 



아 물론. 당장 몸으로 느낄 수 없지만 인간이 잘 믿는 것들도 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만지면 화상입는다는 사실은 대다수 사람들이 믿지. 컵을 던지면 바닥에 떨어질거라는 사실도 믿는다. 그러니까, 컵을 던지는 사람은 반드시 컵이 깨질거라는 걸 염두에 두고 던진다. 불을 만지는 사람은 화상을 감수하고 만진다. 그...
오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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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아름다움. 이 둘만이 중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의 이유이자 내용이자 목적이다. 실은 이들이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살게 만드는 절대적인 두가지라 믿는다. 인간은 제 영혼 한 켠에 고귀한 자리를 품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고 또한 믿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보이지 않는 자리들을 손에 만져지도록 구체적으로 탁월하게 설명해내는 일로 내 남은 삶은 살아질 예정이다. 부디 나의 이 삶이 어떤 경로로든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살아있게 만들 수 있다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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