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1997) 감상문

Orca
Orca · 제국에 관한 글쓰기
2024/03/24
   큐어(97')는 내게 '폭력으로 억제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최면술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살인을 교사할 수 있는 마미야는 살인을 통해 세상을 치유한다는 사이비종교의 계승자다. 이 사이비종교는 권총으로 쏜다고 근절할 수 없는 것으로서 표상된다.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큐어에서는 총구의 권력으로도 사이비종교의 폭력을 억제할 수 없었다. 사이비종교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적을 만나지 못한 채 영화 내내 압도적 힘을 과시하며 독주한다. 형사는 단 한 번도 최면술사이자 큐어교의 교주 마미야의 '적'이 되지 못했다. 형사에게 마미야는 정치적 적이 아니라 행정 관리의 대상이다. 형사의 정체성은 적을 정치적으로 패배시키는 자가 아니라 범죄를 행정적으로 관리하는 자다. 형사가 거듭 마미야를 두들겨 패려고 하고, 육체적 위해를 가하려고 하지만 결국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정치가 거세된 행정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가 거세된 행정이 평온하게 유지될 수 있다면 그것은 마미야의 것과는 다른 사이비종교, 그러나 사이비종교라는 점에서는 같은, 사이비종교에 의해, 자신의 무능을 자각하지 않을 수 있는 마비 수단을 제공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학자가 일본의 '시민종교'라고 부른, 직분윤리에 대한 신앙이라고 봐도 좋다. 경찰은 경찰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삶의 의미를 보장해준다. '범죄자를 잡는 것, 사私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일'이라고 형사는 마미야 앞에서 선언한다. 형사는 현실적으로 무능하다. 마미야를 잡아 족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정신병자 아내를 낫게 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그런데 그는 그런 무능한 자신을 의식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식할수록 자괴감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무능을 가능한 무의식 속에 가라앉혀 놓고 싶어한다. 그의 삶은 곪아간다. 그는 자신의 권력의지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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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6년, 방공통제사 3년, 석사 생활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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