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고(心告)

곡인무영(谷人無影)
곡인무영(谷人無影) · 사람들이 사는 俗에서 공부하는 중
2024/06/08
심고(心告)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뜻대로 살아보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인간의 인연같이 무서운 거이 어디 있나.”

“그림은 살아가는 몸(붓)이 풍기는 마음이요 언어”라고 하는 박진화 화백은 나고 자란 고향 장흥에서 여는 두 번째 개인전 제목을 <박진화의 심고(心告)>라고 지었다. 심고(心告)라…

이 ‘심고(心告)’를 보자마자 떠오른 게 셋이다. 하나는 내 사유의 원천인 ‘혼속명사(混俗明師), 곤수곡인의 ‘염염고천(念念告天)’이고, 또하나는 동경대전(천도교, 동학)에서 본 ‘심고(心告)’이고, 다른 하나는 내레이션(narration)과 서로 묻고 답하는 문답의 대화로 이루어진 금강경(金剛經)에서 본 ‘고백(告白)’이다. 그런데 ‘세존(世尊)’과 ‘수보리(須菩提)’가 서로 묻고 답하는 금강경에는 ‘고(告)’와 ‘백(白)’의 낱 글자만 있을 뿐 ‘고백(告白)’이라는 단어가 없다. 이 ‘고(告)’와 ‘백(白)’은 모두다 ‘아뢰다’, ‘여쭈다’, ‘이르다’, ‘말하다’ 등의 뜻이 있는데, 내 경험에서는 대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고(告)’한다고 하고 ‘백(白)’은 그 반대로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례로, ‘주인백(主人白)’이 그렇다. 그런데 금강경에서는 스승인 세존이 제자인 수보리에게 ‘고(告)’로써 말하고(佛告須菩提), 수보리는 세존에게 ‘백(白)’으로써 말한다(須菩提白 佛言).

물론, 지금의 경우를 예전의 경우에 적용해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다만, 서로 평등(平等)하다는 것과 무등(無等), 무상정등(無上正等)의 바탕을 떠올리고 싶기 때문이다.  ‘각자(의 나)’와 ‘각자(의 너)’는 ‘서로 주체[나들]’로 만나는 ‘우리’라는 하나의 전체이기 때문이다. 기왕 내친김에 억지 하나 더, 나는 광주의 ‘무등산(無等山)’과 장흥의 ‘518억불산(億佛山)’을 같은 맥락으로 연결 짓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 “갑오에서 오월로 오월에서…” 이런, 생각이 급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다보니 갓길로 샜다. 다시.

어쨌든, 궁금해서 그간의 개인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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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보다]'과 '씀[쓰다]'에 관심을 두고 일상을 살피는 중이고, '생각[Text]'을 잘 쓰고 '생각의 바탕과 관계[Context]'를 잘 보려고 공부하는 사신출가수행자 무영입니다. 어느 시인의 시집에서 봤던, "모든 결과는 비로소 과정이었다"고 한 Text와 Context를 매우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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