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베스트셀러 표지


alookso 유두호

“당연히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 아닌가요?”
“서평단 신청할 때만 해도 전혀 몰랐습니다.”
 
지난 8일, 쌤앤파커스 출판사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신간 『벌거벗은 정신력』의 서포터즈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첫 독자를 찾습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공개된 『벌거벗은 정신력』 표지는 지난해 4월 출간된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과 디자인이 지나치게 유사하다. 제목, 서체, 부제, 구도, 띠지까지. (『벌거벗은 정신력』은 요한 하리의 신작이 아닌 2018년에 국내에서 이미 출간된 『물어봐줘서 고마워요』의 개정판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출간한 어크로스 대표는 1월 9일 쌤앤파커스 담당자에게 전화해 “확정된 표지가 맞는지?”를 물었고 담당자는 “확정이다. 외국 저작권사 확인까지 받았다”고 답했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디자인한 [★]규 디자이너 역시 출판사 쌤앤파커스 공식 채널에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현재까지 직접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 사건이 기사화되고 쌤앤파커스는 한 언론을 통해 “어크로스 측과 담당 디자이너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드리고 싶다. 표지는 바꿀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현재로서 별도 연락을 없는 상황이다. 『벌거벗은 정신력』은 이미 상세 페이지도 온라인에 공개한 바 있다.
2023년에 출간된 『도둑맞은 집중력』, 출간 예정인 『벌거벗은 정신력』 표지
제목, 표지 디자인을 어느 정도 참고는 할 수 있습니다. 유행이면 좀 비슷하게 나올 수도 있고요. 제목과 표지를 고민할 때 기존에 나온 책들을 참고합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제목의 형태, 표지의 모양, 심지어 띠지까지. 의도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도둑맞은 집중력』 담당 편집자)
 
책을 만들 때 여러 디자인 시안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산만하게 만드는 집중력 도둑을 그대로 그림으로 활용한 표지, 출간된 버전과 같은 폰트 위주의 색감을 잘 쓴 표지 등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표지라는 게 늘 베스트가 아니라 두 번째 세 번째 시안에서 뽑았을 때 오히려 더 잘 되는 경우가 많아서요. ‘완벽한 그림이 아니면 폰트로 가자. 대신 형광빛 색감을 강렬하게 해서 정말 집중력 도둑맞을 것처럼 가보자’해서 만들어진 표지입니다. 디자이너와 출판사가 오랫동안 고민해서 만든 작업물입니다. 홀라당 표절한 건 출판사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디자이너에 대한 모욕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도둑질이니까요. (『도둑맞은 집중력』 담당 편집자)
 
인하우스 북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K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북디자이너 사이에서 이번 사건은 굉장히 화제다. 이유는 모두가 공감하기 때문이다. 디자인 표절이 가능하다고는하지만 책이라는 제품의 성격상 애매한 경우가 많다. 비교적 선형적인 특징을 가진 음악의 표절 규정은 몇 마디를 단위로 비교할 수 있지만, 한 면을 한 번에 볼 수밖에 책은 표절의 범위를 구분 짓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이 건이 표절로 분류되는 것은 의도가 명백하고 투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 의도가 너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K씨는 “안타깝게도 이 건을 비롯한 표절 시비는 몇몇 있었으나, 앞서 언급한 대로 책이라는 물성이 가진 고유의 특성 때문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같은 저자, 비슷한 주제, 시대의 흐름 및 유행 등 때문이다. 결국 창작자의 양심에 기대는 수밖에 없는데, 그동안은 디자이너에게만 의무가 있었다면 이번 건은 이 책을 제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창작자의 범위 안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출판인 J씨는 지난해 비슷한 사건을 겪었다. 표지 디자인은 조금 다르지만, 같은 주제와 콘셉트를 잡은 책이 1년 간격으로 타 출판사에서 출간된 것. J씨는 “두 책을 비교해보니 콘셉트, 구성, 본문 내용에서도 유사성이 다수 발견됐다. 또 두 책의 그림작가는 동일인이다. 그림작가와 최초 계약 시, 같은 주제의 유사한 책에는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작가는 크게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고 밝혔다. J씨는 현재 형사 고소를 진행 중이다.
 
한편 『도둑맞은 집중력』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영국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의 저서로 2023년 12월 기준, 18만 부가 팔렸고 예스24 독자들이 선정한 ‘2023 올해의 책’ 1위로 선정되는 등 한국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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