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의 끝판왕, 뫼르소의 '정다운 무관심'

이학기 반장
이학기 반장 · 물건 잘 파는 작가
2024/04/02
"야! 너 제정신이냐? 회사 밖은 지옥이야. 회사 다니면서 사이드로 하고 싶은 걸 해야지!"

나의 퇴사 결심을 들은 지인이 급발진했다. 이유를 말할 새도 없었다. 나는 이미 정신 나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찌 그리 단정하는지 의아했다. 나만큼이나 내 인생을 고민해 본 것도 아니면서. 물론 지인은 선한 의도로 나를 걱정하며 말했을 것이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 아닌가. 나도 상대를 알려고 애쓰고 이해하기보다는 내가 아는 것을 이해시키려 애쓴 적이 더 많았다.

신입 사원 때 겪었던 일이다. "지난해 입사자들은 무지개색이라 종잡을 수 없었는데 올해 입사자들은 다들 죄다 회색이네." 인사팀 교관은 50명이 넘는 동기들을 회색 인간으로 싸잡아 분류했다. 쌍둥이조차도 서로 다른 존재이거늘. 전 세계 80억 인구는 각기 다른 80억 개의 빛깔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인간은 나와 다른 상대를 깊이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자기 기준에서 자기 수준만큼 상대를 쉽게 판단할 뿐이다.

마흔에 소설 <이방인>을 다시 읽으며 느낀 한 줄. '인간은 인간의 생각 밖에 존재한다.'

"그때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어머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 <이방인>, 알베르 카뮈, 책세상, 45쪽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특이하다. 그를 깊이 이해하려 할수록 그는 더 멀어진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평소와 다름없이" 초연한 태도를 보인다. 강한 멘탈, 깊은 신앙과는 무관하다. 그저 자기감정 외에는 무신경할 뿐이다. 인위적인 관습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뫼르소는 자연스레 느껴지는 태양에 주목한다. 햇살의 눈부심을 느끼며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려보는 한편, 햇볕의 뜨거움을 느끼며 어머니의 장례를 성가시게 생각한다. 이런 정답고도 무관심한 인간을 봤나!
ⓒ 이학기 반장

"어머니 장례식에 이렇게 밥 잘 먹는 상주는 처음 본다!"

9년 전 어머니 장례식장...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14년간 쿠팡과 이랜드에서 온∙오프라인 MD로 일하며 TOP 매출을 찍어본 영업통. 동시에 3권의 책을 쓴 출간 작가. 현재는 '물건 잘 파는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14
팔로워 10
팔로잉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