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일화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학위 문제로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어떤 분께서 제게 마르크스는 이제 '낡아서' 더 이상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연구주제는 '플라톤' 철학이었지요. 수천년도 더 된 플라톤 연구자가 수백년도 안된 마르크스 연구자의 주제가 낡았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곳, 그게 한국입니다. 한국의 학계에는, 적어도 상위의 대학원에서는 마르크스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학술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계보에 속하시는 분들 중에도 마르크스 자체를 연구하지는 않는 분들이 꽤 많고 그걸 전공하고 싶다고 했을 때 먹고 살기 힘들다며 말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오는 주요한 논거 중 하나가 '마르크스는 낡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가끔 '대안'으로 추천하는 게 칼 폴라니입니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읽어보기는 했는지 의문입니다. 이제 얼룩소에 올라온 어떤 글에 보니 폴라니가 왜 마르크스의 곁가지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더군요.폴라니의 사유의 근간은 마르크스에 의해 규정됩니다. 비록 폴라니는 많은 부분에서 당대의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였지만 폴라니가 가장 열광적으로 찬사를 던졌던 책이 바로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수고>입니다. 그의 표현을 직접 빌려 말하자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자연에 대한 언급"에 있어서는 불명료할 뿐만 아니라 "매우 의심"스러운 지점이 있지만, "인간 정신과 사회에 대한 언급은 명백한 진리이며 매우 중요"한 통찰을 지니고 있습니다.(칼 폴라니,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홍기빈 역, 책세상, 2002, p. 88.) 폴라니가 자본주의를 '악마의 맷돌'이라 부르며 비판할 때 근거가 되었던 '허구적 상품'으로서의 화폐, 노동력, 토지의 존재는 모두 마르크스의 입론을 수용한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경제학비판 체계가 자본=토지소유=임노동=근대국가=국제관계=세계시장의 순서대로 전개되는 '플랜'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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