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인에서 사람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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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nDun C · 30대 뇌졸중환자의 일상
2022/04/01
 사람은 누구나 루틴이 있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또는 먹지 않고), 출근을 하거나  학교에 가고, 일을 하거나 수업을 듣고, 퇴근을 하거나 하교를 해서, 쉬던가 공부를 하던가, 그리고 비슷한 시간에 잠이 든다. 이 루틴을 잘 지키면 시간 감각을 잃지 않고, 몸에도 무리가 가지 않게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는 루틴을 지키기 쉬웠다. 매일 오전 4시에 피를 뽑으러 오고, 7시엔 아침 약을 준다. 약을 받으면 간병인이 세수를 시켜주거나 머리를 감겨주고, 8시 반이면 아침밥이 나온다. 9시엔 회진을 돌고, 그 후에는 각종 검사를 받으러 간다. 12시 반이면 점심밥이 나오고, 오후에는 할 일이 없다. 6시엔 저녁밥이 나오고, 8-9시면 불을 끈다. 호흡기 치료는 하루 4번 정해진 시간에 했고, 3시간마다 간호사가 체온을 재러 왔다. 복잡하다면 복잡하고, 규칙적이라면 규칙적인 병원의 하루. 적어도 정해진 시간에 일어났고,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었다. 안정적이랄까? 환자의 신체 건강은 물론, 얻어맞아 굳어버린 뇌에도 가장 적합한 생활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계속해서 시간의 흐름을 인식시키고, 몸을 움직이고, 습관을 들이는 것.

 한 달이 지나고 나는 퇴원을 했다. 퇴원을 한 후, 이제 그 모든 루틴은 내 책임이 되었다. 뇌경색 환자가 어떻게 퇴원하자 마자 간병인도 없이 사느냐. 돈이 없으면 그렇게 된다. 내 손에 쥐어진 건 외래 날짜와 처방약, 그리고 길고 긴 청구서. 퇴원한 직후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내 몸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말을 듣지 않는 몸이 짜증이 났고, 일을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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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반변성, 중증천식, 뇌경색에 뇌종양. 더 생길 병은 없을 줄 알았는데 부정맥은 협심증으로 진화... 그래도 포기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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